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의약품 관련 관세와 리쇼어링(해외 공장의 미국 복귀) 정책이 점차 가시화하면서 국내 주요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 중 유일하게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주목받는다. 다만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아직 자체적인 대량 생산 경험이 부족한 만큼 미국 내 항체-약물접합체(ADC) 공장을 통해 트랙 레코드를 쌓으며 건설 중인 송도 1공장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내 의약품 제조 촉진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건설할 경우 거쳐야 할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동시에 의약품 관세 발표도 예고하며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에 이어 제약업까지 리쇼어링 압박에 나섰다.
현재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 주요 CDMO 기업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유일하다.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은 지난달 30일 방한한 트럼프 주니어와의 면담에서 바이오 분야와 관련된 미국 내 추가 투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혜택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추가적인 미국 투자와 관련해선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인천 송도 바이오 캠퍼스 1공장 완공을 '0순위'로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뉴욕 시러큐스 공장에 지난 3월 증설이 완료된 ADC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CDMO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미국 투자 확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송도 바이오 캠퍼스 건설을 좀 더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시러큐스 공장과 항체-약물접합체(ADC) 생산시설을 활용할 계획이고 국내 1공장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DC 자체가 상용화된 약물이 많지 않고 지금은 임상 시료용 수주가 많은 편이라 송도 캠퍼스가 지어지기 전까진 ADC 수주가 좀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며 "바로 수익성을 가져갈 수 있는 ADC 사업을 위해 미국에 공장을 증설하고 수주까지 획득한 상태"라고 말했다.
2022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뉴욕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한 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달엔 아시아 소재 바이오기업과 ADC 임상시험용 후보물질 생산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첫 번째 자체 수주이자, 추가 수주를 위한 트랙 레코드를 쌓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아직 자체적인 바이오 의약품 생산 경험이 없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ADC와 같은 차세대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시장 진입 시점이 중요해 경험이 많은 CDMO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완공된 ADC 전용 공장을 가동했으며, 론자와 후지필름 등 해외 기업들도 지난해부터 발 빠르게 ADC 생산시설 증설에 나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약을 내놓는 제약사 입장에선 만일 생산이 잘못돼 시장 진입이 늦어질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아 돈을 더 내고서라도 제시간에 맞춰 가장 잘 만들어주는 곳으로 간다"며 "신생 CDMO 기업이 많아져도 론자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회사가 여전히 선두에 있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리스크가 없는 트랙 레코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