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호르몬만 연구한 의사 과학자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디지털 위고비' 개발에 나선다. 안 교수는 12권의 책을 썼고 30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여편은 주목도가 높은 SCI급 저널에 실렸다. 2007년 병원 외부 독립 건물로 지어진 내분비·당뇨병 센터는 그를 만나기 위한 환자로 연일 붐빈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올해는 유독 활동이 많다. 벌써 '도파민 밸런스', '불멸의 호르몬' 등 두 편의 책을 썼고, 8년 전에 출판한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호르몬이 만든다'는 최근 개정판을 냈다. 젊음과 호르몬의 관계를 탐구한 내용으로 대만 현지에 출판된 '해외 진출 1호 건강서'로 유명한 책이다.
안 교수는 "호르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중고 시장에서 10배 이상 값비싸게 책이 거래된다고 하더라.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최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거의 새로 책을 썼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비만약 '위고비'와 '에겐녀'(에스트로겐 여성)·'테토남'(테스토스테론 남자) 시대에 호르몬이 재조명받는다. 의사가 된 후 평생 호르몬을 연구하고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하며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 낸 안 교수는 "호르몬이 건강과 젊음의 묘약"이라 단언한다.
앞으로 약이나 주사가 아닌 부작용이 적은 '디지털 약'(치료제)으로 호르몬을 관리하는 날이 온다고 그는 바라봤다. 지난해 HLB글로벌에 인수된 HLB라이프케어(구 바라바이오)의 대표로 '디지털 위고비' 제작을 기획 중이다. 지난 25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안철우 교수를 만나 호르몬의 역할과 중요성, 향후 계획을 들었다.
▶호르몬이 왜 중요한가.
-평생 몸속에서 분비되는 양이 찻숟가락 하나 분량이다. 이게 신체 대사뿐만이 아니라 감각, 감정, 철학 등 정신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해석 아닌가.
요즘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위고비, 마운자로가 화제다. 소장 호르몬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로 몸에서 장시간 GLP-1처럼 작용하는 약이다. 이만큼 효과가 클지 누가 알았겠나. 적응증(치료 대상)도 지방간, 수면무호흡증까지 확대됐고 심혈관 질환, 만성 신장 질환, 파킨슨병이나 치매 치료에는 잠재적 효과를 보인다. 정신질환인 중독도 포함된다. 이렇게 '잘 모르는' 호르몬이 알려진 것만 3400여가지다. 임상에서 연구되는 호르몬은 100여가지에 불과하다.
▶새로운 '슈퍼 호르몬'이 나올 수 있다는 건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마이오카인'이라는 근육 호르몬이다. 첫 번째 근육을 만들고 두 번째 지방을 없애고 세 번째 인슐린의 민감성을 높이며 네 번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근감소증, 비만, 당뇨병, 만성피로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더 중요한 건, 외상이나 노화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에게도 새로운 돌파구가 된다는 점이다. 식사와 운동은 건강의 두 축인데, 전자는 수액이나 영양제 등으로 해결할 수 있어도 후자는 방법이 없었다. 마이오카인 기반의 치료제가 등장하면 운동하지 않아도 건강해지는 게 가능할 수 있다.
▶노화도 정복할 수 있을까.
-인간이 호르몬을 정복한다면 불로장생까지는 아니라도 인간의 건강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노화 극복에 중요한 키워드가 '일상생활 수행 능력'인데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처럼 외부의 도움이 없이 내 몸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지 않나.
▶젊게 살기 위해 당장 관리해야 할 호르몬도 있나.
-2005년 내분비·당뇨병 센터를 개소하고 당뇨를 비롯해 뇌하수체질환, 갑상선 질환, 골다공증 등을 치료했다. 호르몬은 하나가 또 다른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그 가운데 '노화'에 관해 가장 중요한 호르몬 4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호르몬 저속 노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빠르면 한 달 만에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변화를 체감했다는 '증언'을 환자로부터 자주 듣는다.
▶4대 호르몬이 무엇인가.
-인슐린, 성장호르몬, 멜라토닌, 옥시토신이다. 수많은 호르몬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메인 호르몬'을 다잡는 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각각 식사,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에 가장 중요하다. 아파트는 대장 아파트, 주식도 대장주가 중요한 것처럼 '대장 호르몬'부터 맞춰나가면 나머지 호르몬도 저절로 조절된다. 1주일마다 하나씩 관리해 일단 한 달이 소요되고 중기적으로 3개월, 장기적으로 1년이면 호르몬 체계가 '리셋'(초기화)된다.
▶해결책이 무엇인가.
-인슐린은 당 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 짜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편식·폭식·단식·속식·야식하지 않기다. 성장호르몬은 10분 이상 빨리 걷기, 야외로 나가 운동하고 점차 시간을 늘리고 근력 운동 추가하기다. 멜라토닌은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수면 환경 개선하기를 꼽는다. 옥시토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스킨십하기, 마사지를 받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고 자신만의 취미 갖기를 권한다.
▶결국 좋은 생활 습관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 맞다. 그걸 호르몬 기반으로 '동기 부여'해주면 결과가 달라진다. 공부도 목표가 있어야 스스로 잘하는 것과 같다. 호르몬은 운동 종류, 먹는 음식마다 분비량이 다르기도 하다. 개별 처방을 통해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마지막은 치료 개입이다. 호르몬이 너무 부족하거나 균형이 심하게 깨졌으면 약이나 주사로 치료해야 한다. 전문가의 영역이다.
▶약이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하지만 잘 써야 한다. 호르몬이 재밌는 점은 비타민과 똑같은 화학 물질이지만 비타민은 내가 만들 수 없는데, 호르몬은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뭘 보고, 먹고, 듣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진다. 봄이면 마음이 들뜨고 가을이면 우울한 것도 일종의 호르몬 문제다. 온도, 습도, 일조량에도 영향을 받고 하루 중에도 분비량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지금은 이걸 다 고려해 용법·용량을 결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개별화된 처방이 불가능할까.
-과거에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인공지능(AI)과 의료기기 발전이 모든 걸 바꿔놓고 있다. 한 사람을 여러 호르몬의 패턴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HLB그룹과 손잡고 호르몬을 통한 AI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를 구현할 생각이다.
▶HLB라이프케어 대표로서 목표는.
초고령화 시대에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이 사실은 다 호르몬과 관련돼 있다. 지금까지 연구하고 치료해 온 분야다. 병원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예방과 치료에 적용해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프로그램을 HLB그룹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소위 '디지털 위고비'를 만들겠다는 건데 가능할까.
-10년간 5000여명의 정제된 '호르몬 패턴 데이터'를 구축했다. 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어렵지만, 생활방식과 호르몬 변화에 따라 어떤 병이 발생할지 등을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다. 질병 발생과 관련한 '1차 예방'뿐 아니라 이미 만성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합병증을 막는 '2차 예방' 관련 데이터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에도 없는 독자적이고 고유한 데이터다. 이를 기준으로 호르몬 교정 목표를 제시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설계·코칭하면서 이용자가 건강한 삶을 살게 하고 싶다. 호르몬을 비침습적으로 정확히 측정하는 것부터 난관인데 눈물이나 침으로 호르몬을 측정할 수 있을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가능한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디지털 치료제를 통해 개인 맞춤형 호르몬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위고비처럼 예상치를 뛰어넘는 건강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