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자기공명영상)·CT(전산화단층촬영) 등 특수의료장비의 운영과 관련한 정책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 인력 기준은 완화하고, 설치 기준은 강화하는 방향이다. 다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탓에 시행까지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6일 MRI 설치 의료기관에 영상의학과 전문의 근무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현행 시행규칙에서는 MRI를 설치·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주 4일, 32시간 이상 전속으로 근무해야 한다. 환자 안전과 고가 장비인 MRI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MRI 설치와 검사 건수 증가, 의정 갈등 등으로 영상의학과 구인난이 심화했고, MRI를 가동하기 위해 지불하는 인건비가 크게 늘었다. 지역 병·의원의 경우 전문의를 확보하지 못해 MRI 검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복지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주 1일, 8시간 비전속으로 근무해도 MRI를 운영할 수 있게 인력 기준을 완화했다. 이를 통해 의료 취약지의 진단 접근성을 높이고, 인기과인 영상의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완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가 개정안을 공개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국민참여입법센터에는 이날 오후 2시 현재 600개가 넘는 '반대 의견'이 몰리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응급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고, 과잉·부실 검사를 양산해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한영상의학회와 영상의학과의사회도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영상 품질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반면 상근 제도 폐지를 환영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한 수도권 의사 A씨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월급이 세전 5000만원에 달하는 것은 인력 규제 영향이 크다는 게 대부분의 판단"이라며 "인력 규제 완화는 필수 의료 인력난 해소나 인공지능(AI) 발전, 과잉 진단 억제와 같이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복지부 정책을 지지했다.
영상 장비 운용을 둘러싼 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MRI 인력 기준 완화에 이어 이해관계가 더 첨예한 '공동활용병상제 폐지'가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최근 복지부는 유관 단체와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동활용병상제 폐지는 어느 정도 검토가 진행된 사항"이라고 했다.
공동활용병상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복지부가 폐지 추진을 예고한 규제다. 현재는 의료기관이 MRI나 CT를 설치하려면 200병상 이상(군 지역 CT는 50병상 이상)을 갖춰야 한다. 만약 병상 수가 적으면 다른 의료기관과의 병상 합계가 이를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공동활용병상제라 한다. 쉽게 말해 병상 수가 50개뿐이면 인근 병원에서 병상 150개를 함께 쓰겠다는 동의서를 받아 200개를 채워야지 MRI, CT를 가동할 수 있다.
애초 과잉 진단을 예방하고 환자 의료비 지출을 관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현재도 OECD 평균보다 CT와 MRI 촬영이 1.5~2배 많고 되레 영상 검사를 시행하고 싶은 병·의원을 대상으로 뒷돈을 받고 병상을 매매하는 등 악용 사례도 등장했다.
다만, 병상 수 확충이 어려운 동네 병·의원의 반발과 환자 편의 제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등을 감안해 규제 예외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가 정책 안착의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의료계에서는 병상 기준 완화와 함께 △신경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과 △전문의 6~8명 고용 시 △전문병원 등이 예외 조건으로 거론되고 있다. 권세광 대한전문병원협회 학술위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전문병원은 뇌혈관, 심장, 관절 등 특정 질환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한 진료과목에 난도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인력과 시설 등에 정부 검증을 마쳤고 지역 필수 의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전문적인 진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소아청소년병원은 지역 사회에서 대학병원을 대신해 경증·중등증·중증 환자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CT나 MRI와 같은 진단 장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소아·청소년의 경우 특수장비검사의 건수가 성인에 비해 많지 않아 병원의 수익보다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 진료의 필요에 의해 설치를 고려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