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랬어? 기억 안 나". 서울에 사는 직장인 서주혁씨(30대·가명)는 설 연휴 첫날 울산 본가에서 만난 어머니의 모습에 걱정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본 어머니는 방금 전 한 말을 잊거나 익숙한 집 근처 골목에서도 길을 헤매는 등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였다. 서씨는 "어머니가 기억력도 나빠지고 요즘 쉽게 우울해하는 것 같다"며 "함께 병원을 방문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달라진 행동 변화가 유독 눈에 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부모님의 기억력 변화다. 방금 한 대화 내용을 잊거나 날짜와 요일을 헷갈리는 등의 증상이 대표적이다. 단순 기억력 감퇴로 보일 수 있지만 치매의 주요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전체 치매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이동영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함께 알츠하이머병의 증상과 진단·치료, 예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알츠하이머병은 이상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여 신경세포 손상이 진행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초기엔 최근 일이나 대화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이 흔하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잊거나 물건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 말이 막히기도 한다.
병이 진행되면 날짜와 요일을 헷갈리거나 익숙한 장소에서도 방향 감각이 흐려질 수 있다. 판단력과 계획 능력이 떨어져 돈 관리·약 복용 같은 일상 활동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기억력 저하 외에도 우울·불안·불면·짜증·의심 같은 행동 변화가 동반된 사례가 적잖다. 이러한 변화가 수개월 이상 지속되고 일상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면 단순 노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의 출발점은 가족의 관찰이다. '언제부터, 어떤 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정리해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병원에선 면담과 진찰을 통해 인지기능 저하 여부를 평가하고 신경 심리검사로 객관적 확인을 거친다. 또 혈액 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다른 원인 질환 여부를 함께 살펴본다. 필요시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를 시행, 뇌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진단 정확도를 높인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목표는 현재의 인지 기능 수준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에 있다. 경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약 8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약물인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복용한 경우 요양시설 입소 비율은 약 20%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 대부분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악화한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엔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치료제가 사용되며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병 진행을 늦추는 데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동영 교수는 "불면·초조·공격성·망상 등 행동 증상도 중요한 관리 대상"이라며 "생활 환경을 조정하고 비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지역 치매안심센터의 인지훈련과 정서·사회적 프로그램도 초기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완치가 어려운 알츠하이머병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뇌혈관을 지키는 건 기본이다. 고혈압·당뇨·이상지질혈증·비만 관리 및 금연은 이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적정 칼로리 범위 내에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 과식과 과음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체 활동도 필수다. 걷기처럼 부담 없는 신체 활동을 주 3회 이상, 가능하면 매일 실천하는 게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맞는 취미나 사회적 활동을 더하면 효과가 커진다. 또 우울과 스트레스가 오래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 인지 건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예방법이다.
이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 저하나 행동 변화는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닌 뇌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이란 인식이 중요하다"며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선택지는 줄이며, 반복되는 질문에 차분하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달력·시계·메모·사진 등 환경적 단서는 (환자의)혼란을 줄이는 데 유용하며 일상 일정은 과도하게 빽빽하지 않게 유지하는 게 좋다"면서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된다면 미루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해 정확한 평가와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