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한국인↑…"수면장애 약, 없어서 못 쓰고 있어도 못 써" 왜

정심교 기자
2026.03.09 16:28

국내에서 수면장애(불면증·하지불안증후군·기면병·수면무호흡증 등) 환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환자 상당수는 치료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면장애 치료제가 세계 시장에 나와도 국내 수면장애 환자는 정작 약을 구경하지도 못하거나, 약을 처방받더라도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면서다.

대한수면연구학회 신원철 회장(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은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면장애 치료제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너무 제한적인 데다, 저수가로 인한 글로벌 제약사의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 현상이 이어지면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 예로 기면병 치료제 중 하나인 와킥스(Wakix, 성분명: 피톨리산트)는 기존의 각성제 기반 치료제들과는 다른 기전으로 히스타민 H3 수용체를 조절해 각성을 유도한다. 국내에선 2020년 12월 급여 항목에 등재돼 환자들은 건보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2024년 9월16일 돌연 이 약의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 국내 의약품 가격이 세계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대보다 지나치게 낮은 이유로 프랑스 제약사인 바이오프로제트 파마(Bioprojet Pharma)가 공급을 포기해서다.

신 회장은 "결국 기면병 환자들은 대체할 수 있는 동일 성분의 약이 없어 치료 공백을 겪게 됐다"며 "현재 와킥스는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비급여로 처방받아야 하는데, 환자들은 약제를 구하기 어려운 불편과 함께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불면증 환자 상당수도 적극적인 치료를 꺼리는 분위기다. '부작용이 덜한' 수면제가 나왔지만, 불면증 환자들에겐 문턱이 높기 때문. 그간 불면증 환자에게 주로 처방된 기존 수면제(벤조디아제핀, 비벤조디아제핀 계열)는 의존성이 비교적 높고 낙상과 인지 저하, 호흡곤란, 단기 기억상실, 이상행동 같은 부작용 위험도 뒤따랐다. 이런 단점을 극복해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도라(DORA, 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 계열 약물은 의존성이 낮고, 수면 구조를 정상에 더 가깝게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계에선 혁신적인 불면증 치료제로 평가받는다.

이런 도라 계열 약물 가운데 렘보렉산트 성분은 '데이비고'라는 제품명으로 연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리도렉산트 성분(제품명: 큐비빅)도 연달아 출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 두 약제 모두 건보에서 제외된 '비급여'로 책정되면서, 환자의 비용 부담이 클 전망이다. 결국 처방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학회의 우려다.

환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는 건 하지불안증후군도 마찬가지다. 이 병은 주로 잠들기 전에 다리에 불편한 감각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다리를 움직이게 되면서 수면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데, 국내 환자 수만 300만명에 달한다. 2016년 발표된 '하지불안증후군 치료 가이드라인'에선 장기간 사용 시 증상이 악화할 우려가 있는 도파민효현제 대신 알파2델타리간드 제제인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을 하지불안증후군의 1차 치료제로 권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들 두 약제는 건보에서 적용되지 않아, 환자는 매달 수십만원씩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수면장애 환자는 늘고 있는데, 국내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약 대부분이 비급여에 치중돼있다 보니 이들이 부담해야 할 진료비 본인부담금도 덩달아 커졌다. 머니투데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불면증 환자 수는 2020년 65만8675명에서 2024년 76만8814명으로 4년 새 16.7%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이 낸 진료비 본인부담금 총액은 같은 기간 48.9%(2020년 5547만8805원→ 2024년 8262만49원) 불어났다. 인원 증가 폭보다 본인부담금 증가 폭이 3배 더 컸다.

대한수면연구학회 김지현 부회장(이대서울병원 신경과)은 "다양한 수면 질환에서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돼, 수면장애 환자들이 필수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가 치료제에 대한 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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