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처방을 성분명으로? 안돼!" 개정안 국회 입성에 의사들 반발

정심교 기자
2026.03.11 16:38
성분명 처방을 합법화하는 개정안이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소위에 상정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가 이날 오후 4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열고 결사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의협

'처방전'을 놓고 의사와 약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의 경우 처방전에 약 '상품명' 대신 '성분명'을 쓰게 하자는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첫 문턱을 넘으면서다.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해 심사했다.

이 법안은 의사가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처방할 때 처방전에 의약품의 '명칭'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은 의사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도 담겼다.

이를 두고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은 의약분업 근간을 뒤흔드는 제도", "의사가 처방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며 결사반대하겠단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오후 4시 국회 제1소위가 열린 본청 계단 앞에서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열고 결사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약 처방은 단순히 성분명, 즉 화학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면서 "환자의 상태, 병력, 병용약물, 흡수율, 부작용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 약제와 용량을 선택하는 전문적인 진료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리 약들의 성분이 똑같다더라도 임상 반응은 천차만별"이라면서 "소아와 고령자, 중증질환자, 수술 또는 장기 이식 환자와 같은 건강이 취약한 국민들께 이러한 작은 차이는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부. /출처=의안정보시스템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동일 성분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제조 공정, 원료, 첨가제, 제형 등의 차이에 따라 실제 임상 효과와 부작용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의료현장에서 이미 널리 확인된 현실"이라며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은 단순히 성분이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은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라는 합의로 출발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 원칙을 정면으로 깨고 처방권을 사실상 약사에게 넘기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은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황 회장은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고 형사처벌까지 규정한 이번 개정안은 형법상 과실치상죄보다 더 과한 처벌"이라며 "명백한 의료인 탄압이자 직역 모독으로, 환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헌법적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대한의사협회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 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협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성분명 처방 관련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5.11.27.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

기존엔 의사가 특정 브랜드명을 처방하는 '상품명 처방' 관행으로 약사는 똑같은 성분의 더 저렴한 약으로 대체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이 가능해지면 약사는 똑같은 성분의 여러 의약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 처방할 수 있다. 즉, 약사의 '대체 조제'가 가능해진다.

대체 조제가 활성화하면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약가 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 "한국의 대체 조제율은 0.79%에 불과해 미국(91%) 등 주요 국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복제약(제네릭) 사용 비중이 높음에도 약품비 절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의 복제약 효율비는 1.2대1 수준이지만 미국은 4.5대1, 유럽은 3.7대1 수준으로 복제약이 재정 절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약사들은 이번 개정안이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약사회 권영희 회장은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간 품절의약품의 약가 인상, 의약품 균등 공급 조치 등과 같은 단편적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건 이미 드러난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해외에선 성분명 처방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고 있다. 호주는 극심한 의약품 품절 사태를 겪은 뒤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했으며, 일본은 성분명 표기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오리지널과 복제약(제네릭) 간 약효 동등성을 보장하며 복제약 사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도 상품명으로 처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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