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형 거점도매 대웅제약, 의약품 유통혁신 시작하나

박정렬 기자
2026.04.23 04:04

실시간위치·도착시간 확인… 물류·재고관리 효율화 기대
유통협회 즉각 반발… 업계는 비용절감 공감 등 관심 집중

국내 상위 제약사인 대웅제약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긴 의약품 유통체계 혁신에 나섰다. 거점 도매사를 선정해 배송 안전성을 향상하고 물류·재고관리 효율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지난달 1일부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거점 도매사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회수하는 '블록형 거점도매'를 도입했다. 그동안 불특정 다수의 도매사가 의약품을 유통하던 데서 '소수의 파트너'에 1년간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게 골자다.

거점도매의 필요성은 환자·약사를 비롯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지금의 다단계·분산형 구조로는 어디에 무슨 재고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려도 품절사태를 빚고 물량이 한곳에 쏠리는 공급 불균형 문제를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었다.

대웅제약은 이런 문제를 블록형 거점도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체개발한 TMS(배송관리시스템)가 실시간 배송위치와 도착예정 시간을 제공하고 AI(인공지능) DCM(Data-Centric Management)을 활용한 수요예측으로 특정 지역·도매사 물량쏠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TMS·AI DCM 시스템을 거점 도매사에 무상으로 구축·교육하는 등 초기투자를 단행했다.

배송서비스 역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했다. 거점도매는 하루 2회 정기배송을 기본으로 △주문 후 3시간 이내 긴급배송 △약국에 의약품을 배달하는 새벽배송을 제공한다. 반품처리 기간도 거점 유통사가 직접 수거한 뒤 제약사로 보내는 '직배송시스템'을 통해 10일 이내로 줄였다.

다만 전체 의약품 공급업체의 88%를 차지하는 도매사들이 "제약사가 목줄을 죈다"며 반발해 제도안착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의약품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 효율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유통 주도권을 독점하고 다른 도매사를 고사시키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1인시위에 이어 지난 21일 회원 등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강남의 대웅제약 본사 앞에서 반대집회를 여는 등 반발수위를 높여나간다.

의약품 공급 현황/그래픽=이지혜

국내 의약품 유통의 경우 제약사는 병의원, 도매사는 약국 중심으로 이뤄진다. 거점도매의 도입은 제약사와 거래하던 도매사의 유통마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빌미로 도매사가 제약사를 '보이콧'(거부운동)하면 제약사도 단기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 이명선 DB증권 연구원은 "전문의약품 유통망 재정비에 따른 제품반품·수수료 정산으로 대웅제약의 1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대웅제약은 '후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대형 도매사 중심의 거점도매가 안착한 것은 유통 집중화에 따른 안전성·효율성, 서비스 향상을 시장이 인정한 결과라며 오히려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국내 도매사 수는 증가했지만 유통구조가 촘촘해진 것과 서비스의 품질은 별개 문제"라며 "블록형 거점도매는 물량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관리·배송시간·재고보고 등 엄격한 물류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책임형 파트너십'으로 역량 있는 업체라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대웅제약의 '유통실험'에 주목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릭(복제약) 약가인하로 제약사마다 비용절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며 "유통체계 변화에 따른 투자 대비 이익, 규모의 경제달성 여부 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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