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 A씨는 수년 전 예고 없이 보행장애가 생겼다. 특별히 넘어진 적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증상이었다. 걷기 자체가 버거워진 A씨는 병원 검사 과정에서 양쪽 대퇴부에 실금이 간 것을 확인했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골밀도, 암 검사, PET-CT(컴퓨터단층촬영) 등 수백만원을 들여 온갖 검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절망감을 느끼던 A씨는 이후 효소 수치 측정과 유전자 검사 등을 거친 뒤에야 '저인산효소증'을 진단받았다. 국내 환자 수 10명 남짓의 극희귀질환이었다.
100만명 중 한명꼴로 발생하는 극희귀질환 '저인산효소증'의 국내 환자 수는 약 10명으로 추산된다. 10년 전 세계 유일한 치료제 '아스포타제 알파'(스트렌식주)가 국내 허가를 받았고 이후 건강보험 급여화도 이뤄졌지만, 제한적 기준 탓에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A씨를 비롯해 국내 저인산효소증 환자 치료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정윤석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전 대한내분비학회 이사장)는 최근 본지가 이 병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저인산효소증은 A씨처럼 본인이 예외적인 상황을 겪지 않으면 이름을 떠올리기도 어려울 만큼 인식 자체가 부족한 질환"이라며 "환자들의 현실을 고려해 제한적인 급여 기준을 유연화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저인산효소증은 정확히 어떤 질환인가.
▶100만명 중 한명꼴로 발생하는 극희귀질환으로 10~80대 전 연령대에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ALP) 수치다. ALP는 뼈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로 ALP가 부족하면 칼슘과 인산이 잘 붙지 못해 뼈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부족한 정도가 극심하면 태아기나 주산기(임신 29주~생후 1주의 출산 전후 기간)에 뼈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ALP 수치가 낮으면 근육 약화나 관절 통증 등 여러 형태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주요 증상은.
▶골다공증처럼 일반적 질환으론 설명되지 않거나 특별한 외상 없이 골절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또 치아가 특별한 외상이나 자극 없이 갑자기 빠지거나 깨지는 증상도 중요한 임상적 특징이다. 실제 한 40대 여성 환자는 둘째 출산 후 특별히 딱딱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치아가 빠졌다. 이 같은 치아 조기 탈락은 성인과 소아 환자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다.
-국내 환자 규모와 질환에 대한 인식은.
▶성인의 경우 증상이 심각한 환자는 10명 수준으로 추산하며 의심 환자 및 소아 환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환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치료제 도입으로 질환에 대한 인식 자체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특히 아주대·세브란스·서울대·삼성서울병원 등 일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질환 경험이 쌓이면서 타 병원에서 의심 환자를 의뢰하는 사례도 늘었다. 다만 여전히 전반적인 질환 인지도가 낮아 임상 현장에서 쉽게 떠올리긴 어려운 질환이다.
-대한내분비학회와 환우회가 '저인산효소증 레지스트리(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다.
▶대한내분비학회 희귀질환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학회 플랫폼을 통해 환자 정보를 체계적으로 입력·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ALP와 피리독살-5'-인산(PLP·저인산효소증 진단과 관련된 특이적 지표) 수치, 유전자 변이 여부, 뼈·관절 증상, 치아 상태 등 주요 임상 정보를 입력하면 전문가가 질환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내 환자 현황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조기 진단과 치료 환경 개선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는.
▶52세 여성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주대병원에 오기 3년 전부터 보행 장애가 있었지만 초기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정밀 검사에서 양쪽 대퇴부에 비전형적 대퇴부 골절이 확인됐지만 원인이 불명확했다. 보통 이 골절은 골다공증 치료제 '비스포스포네이트'의 장기 복용 후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 환자는 해당 약물 복용 이력이 전혀 없었고 골밀도도 정상 범위에 외상 병력도 없었다. 매우 이례적인 특징이라 암 검사까지 진행했지만 정상이었다. 이후 효소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던 중 저인산효소증을 의심하게 됐고 추가 검사를 거쳐 최종 진단했다.
-ALP 수치만으로도 저인산효소증을 의심할 수 있나.
▶보통 ALP가 높으면 간 이상을 의심하지만 낮은 경우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인산효소증에선 외려 낮은 ALP 수치가 중요한 단서다. 일반적으로 골절이 발생하면 뼈 회복 과정에서 골형 ALP 활성도가 증가하며 전체 ALP 수치가 상승하는 게 정상적이지만, 저인산효소증 환자는 골절이 있어도 수치가 높아지지 않고 낮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ALP 수치 정상 범위는.
▶성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약 30~100유닛 퍼 리터(U/ℓ), 소아는 100~300U/L이 정상 범위로 평가된다. 한 차례 검사에서 낮게 확인된 뒤 재검사에서 정상에 가까운 수치를 보일 경우 임상적으로 간과되기 쉽다. 한 번이라도 ALP 저하가 확인됐다면 계속 수치를 재확인하고 임상 증상과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정상과 이상 사이 '경계선' 단계에서도 질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진료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도 세계 유일한 효소대체요법 치료제가 도입됐고, 건강보험 급여도 적용되고 있지만 이 기준이 소아에게만 적용돼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실제 진료했던 성인 환자 중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해 비급여로 권장량에 못 미치는 약물을 투여해 치료를 지속한 사례가 있다. 수술 치료도 병행해 일정 수준 개선 효과는 있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환자와 가족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소아 환자 급여 기준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의 경우 엑스레이상 특징적 골 변형이 명확하게 확인되는 등 제한적 조건을 충족해야 급여가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선 영상학적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 환자도 있다. 한 16세 남아 환자는 엑스레이상 다리 변형이 뚜렷하지 않단 이유로 급여 적용이 제한됐다. 보조기 착용 등 대증치료로 생활을 유지 중이지만, 또래보다 작은 신장과 제한된 신체 활동으로 신체적·심리적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성인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확대하고 소아 환자에게서도 영상학적 기준 중심의 제한적 급여 조건을 더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