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3차원 실험' 신약 확률↑…美도 놀란 지방병원 "다음은 우주"

박정렬 기자
2026.05.06 16:03

화순전남대병원, 우주의학 클러스터 청사진
폐광서 미세중력 실험…역노화, 항암 등 난제 연구
20년 이상 쌓은 임상 데이터로 성공 확률 높여

그러나 김형석 화순전남대병원 법의학과 교수가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나 화순 우주의학 클러스터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화순전남대병원

세계적인 암 치료 역량을 갖춘 화순전남대병원이 차세대 비전으로 '우주의학'을 낙점했다. 지역 폐광을 리모델링해 설비를 구축하고 역노화·원격의료·항암 신약 등의 연구 고도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500억원에 달한다.

우주의학은 이름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방 병원이 가능한 일인가' '왜 빅5도 아닌 화순전남대병원이 나서느냐"고 질문한다. 내부 회의에서조차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김형석 법의학과 교수(전 의생명연구원장)는 "지방에서 '최고 암 병원'이 탄생할 것이라고는 누군들 생각했느냐"고 되묻는다. 2004년 전남대병원 분원으로 개원해 5개 센터를 암 하나에 집중하고, 미국 뉴스위크 선정 '2026년 세계 최고 병원' 평가에서 전국 18위, 국립대병원 중 서울대 다음 2위를 차지한 '역사'(레거시)는 준비와 도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다.

그는 "이미 수년 전에 △피지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병원 자동화 △다문화 증가에 따른 유전자 뱅크 구축 △환자 면역 증강을 위한 메디 푸드 개발 등 8대 미래 전략을 검토하고 △바이오 안보 △우주의학 중에 후자를 최종 선정한 것 "이라며 "암에 역량을 집중해 성공 모델을 만들었듯이 우리 병원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 계획을 세우고 앞장서는 것"이라 말했다.

화순전남대병원 현황/그래픽=이지혜

알고 보면 우주의학은 일상생활 가까이에 있다. 전자레인지, GPS는 물론 혹독한 우주 환경에 맞서는 혁신 기술은 수많은 '첨단 의학'으로 재탄생했다. 우주인의 건강을 지구에서 확인하기 위해 개발된 무선 센서·모니터링 기술은 오늘날 병동·중환자실의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의 토대가 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식물 재배 실험으로 시작된 LED 기술은 피부 재생, 상처 치유, 통증 완화 등 다양한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주망원경의 이미지 센서·처리 기술은 내시경·MRI·CT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구현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NASA의 엔지니어가 개발한 소형 고효율 펌프 기술은 '인공 심장'의 기초가 됐다. 김 교수는 "우주의학은 우주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나 엠디엔더슨은 우주에 가지 않고도 중력이 약한 '미세중력'을 만드는 장비를 활용해 신약 개발, 역노화, 암 정복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근육·뼈가 약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어 노화가 촉진되고, 세포가 본연의 형태를 갖춰 작동하는데 이런 환경을 연구개발에 십분 활용한다. 이를 벤치마킹해 화순의 80만평 부지 폐광에 미세중력 장비를 들여 동시다발적인 연구를 추진한다는 게 '화순형 우주의학'의 청사진이다.

화순전남대병원 미래의료혁신센터 개요/그래픽=이지혜

그래도 왜 화순, 그것도 폐광이어야 할까. 김 교수는 그 이유로 첫째, 화순전남대병원의 존재를 꼽았다. 화순전남대병원은 치료 성적은 물론 암 연구 데이터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인체자원은행에 20년간 쌓인 위·폐·간·유방·대장암 등 4건 이상의 암 샘플을 기반으로 환자별 약 효과를 한 번에 파악하는 한국형 조직교차반응(TCR) 데이터를 구축했다. 실제 치료 데이터로 신약의 임상 유효성을 검증하는 RWE(실제임상근거) 기반 임상시험 체계도 마련한 상태다.

미세중력 시뮬레이터로 암 샘플을 3차원 종양 모델로 키우는 것은 연구의 정밀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중력이 작용해 2차원으로 눌린 상태서만 바라보던 세포가 몸 속에서처럼 입체적 구조를 갖추면 암이 커지거나 퍼지는 과정, 노화가 암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확인할 수 있다"며 "4만건의 암 샘플이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보재가 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둘째, 연구에서 임상·생산까지 전주기 파이프라인이 구축됐다. 화순전남대병원은 특히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오는 전(비)임상 시험에 특수성을 갖추고 있다. 2024년 지상 7층~지하 2층 규모로 준공한 미래의료혁신센터를 '하드웨어'로,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내년까지 '케이-호프'(K-HOPE)라는 이름의 스마트 임상시험 플랫폼을 구축해 고도화를 이뤄낼 계획이다. 약 처방 등 임상 기록, 영상, 인체조직 등을 인공지능(AI)으로 통합 분석해 신약 사업화의 장벽(전임상)을 뛰어넘는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제조·생산기지인 GC녹십자 화순공장까지 인접해 있어 '전주기 신약 개발'에 최적화됐다는 설명이다.

김형석 화순전남대병원 교수./사진=화순전남대병원

마지막은 폐광의 극저방사선·전자기 차폐 환경이다. 김 교수는 "120미터 지하의 폐광은 방사선이 지상의 10분의 1 수준이고, 전자기파 간섭이 없다"며 "이것이 연구의 '순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방사성 의약품부터 공간이 제한돼 우주에서는 하기 힘든 양성자·중입자 치료 효과 판단도 방해 요소(방사선·전자파)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로봇을 이용한 원격수술은 신호 지연이 있으면 안 되는데, 이를 극복하지 못해 세계 표준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방해 신호가 없는 화순 폐광이 훌륭한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화순전남대병원은 미지의 우주의학을 향한 여정을 정부, 지자체, 기업 등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자체와 일부 기업에서 이에 동조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병원 중심 바이오 연구 클러스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우주의학을 중심으로 국가 바이오산업의 '새 판'을 짜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