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만성질환으로 인한 병원 밖 심정지 환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사망 결정 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정부의 통합돌봄 정책과 환자 선택 등으로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례가 늘지만, 정작 가정 내 사망은 객사(客死)처럼 처리되는 실정이다. 심폐소생술(이하 소생술) 유보 사례의 3분의 1이 가족의 뜻이란 연구가 있지만 '존엄한 죽음'을 논의하기 위한 전국 단위의 기초 자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2022년 대한응급의학회지에 실린 강동성심병원 응급의학과(목동엽∙조규종∙조영석) 연구에서 2018~2020년 서울 지역의 병원 밖 심정지 환자 2만7313명(외상 제외) 중 57.1%인 1만5598명이 소생술 유보를 결정했다.
유보 이유는 명백한 사망(44.6%)에 이어 보호자 거부(32.6%)가 가장 많았다. 이어 의사의 직접 의료 지도(13.8%)였고, 사전연명중단이 확인되어서는 1.5%로 매우 미미했다. 이는 병원 밖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규종 교수는 지난 4월 경주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연구 내용을 발표하며 "심폐소생술 유보는 정부의 급성심장정지조사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데, 절반 이상이 이를 선택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병원 밖의 연명의료중단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119 구급대 출동과 심폐소생술 중단 프로토콜을 개발·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폐소생술 유보는 사실상 중단과 같은 개념이다. 2025년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구조자가 위험하거나 △사후강직, 신체 절단·부패 등 사망 징후가 확실한 경우 △심폐소생술 거부 표시가 있는 경우 등에서는 소생술 유보가 허용된다.
중단이 아닌 유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국내에서 의사만이 사망을 선언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 등이 사망으로 판단해도 소생술을 '중단'을 할 수 없다. 유보 기준에 대한 논의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미국심장협회(AHA)나 유럽소생위원회(ERC) 등이 소생술 중단(TOR)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통합돌봄 정책과 고령화·만성질환 증가에 따라 병원 밖 심정지 환자와 소생술 유보 사례는 점차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소방·경찰 등 현장의 업무 부담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119 구급대는 소생술 유보를 결정해도 사망자를 이송할 수 없어 바로 병원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경찰에 인계한다. 경찰은 병원 밖 심정지를 '변사자'로 구분해 목격자 조사 등 범죄 혐의점을 수사하는데, 현장에 검안 의사를 부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에 운구차로 실어 가 시체 검안서를 발급받아 사망을 판단한다.
한 수도권 소방 관계자는 "심정지 신고가 들어오면 단시간에 최대한의 처치를 위해 인근 소방서까지 구급차 2대가 출동하는 게 원칙"이라며 "한 대가 도착해 소생술 유보를 결정하면 다른 곳에서 출동한 구급차에 연락해 중간에 돌려보내지만, 이 과정에 일정 부분 '출동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소방과 경찰에서 투입 인력이 상당한 만큼 소모되는 비용도 클 것"이라며 "소생술 유보 규모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조사하고, 이를 근거로 사망 절차 개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