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얼마나 먹는지보다 '어떤 종류'의 고기를 먹느냐가 특정 암 사망 위험과 더 관련 있단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성은 붉은 고기를 많이 섭취할수록 위암 사망 위험이 낮아졌고, 햄·소시지 등 가공육을 많이 먹는 경우엔 직장암 사망 위험이 2.45배 높았다. 여성은 곱창 등 내장육을 많이 먹을수록 유방암·췌장암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유인선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공동 연구진은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사업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 14만7562명(남성 5만3847명·여성 9만3715명)을 대상으로 '육류 종류별 섭취량과 암종별 사망률의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아시아 인구집단에서 육류 종류별로 암 사망률을 분석한 국내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영양·식이 분야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Frontiers in Nutri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육류를 △붉은 고기(소·돼지) △닭고기 △내장육 △가공육으로 분류했다. 붉은 고기·닭고기·내장육은 섭취량에 따라 4개 집단(1~4분위)으로, 가공육은 섭취 여부에 따라 섭취군과 비섭취군으로 나눴다. 이후 나이·BMI(체질량지수)·흡연·음주량·교육 수준·신체활동·총 에너지 섭취량을 보정해 암종별 사망 위험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전체 육류 섭취량은 남녀 모두에서 전체 암 사망률과 유의한 연관성이 없었다. 그러나 고기 종류별로 분석하면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먼저 남성은 붉은 고기를 가장 많이 섭취한 집단(4분위)이 가장 적게 섭취한 집단(1분위)보다 위암 사망 위험이 52% 낮았다(위험비 0.48). 이 경향은 체질량지수(BMI)가 25 미만으로 비교적 마르거나 흡연 경험이 있는 남성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반면 가공육 섭취자는 미섭취자보다 직장암 사망 위험이 2.45배 높았다.
여성의 경우 내장육을 비교적 많이 섭취한 집단(3분위)이 가장 적게 섭취한 집단(1분위)보다 유방암 사망 위험이 2.57배, 췌장암 사망 위험이 1.83배 높았다. 이 연관성은 60세 이상·BMI 25 미만·비흡연 여성에서 더 뚜렷했다.
연구진은 남성에서 붉은 고기가 위암 사망 위험 감소와 함께 나타난 배경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꼽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섭취하는 붉은 고기의 대부분이 돼지고기인데다, 구이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 염분 노출과 지방 구성이 서구와 다르단 것이다. 또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집단이 사회경제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위암 검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유인선 교수는 "간·곱창 같은 내장육엔 비소·카드뮴·납 등 중금속이 일반 살코기보다 더 많이 들어있을 수 있다"며 "이런 물질이 지방 조직에 쌓여 있다가 체중 변화나 노화 과정에서 혈액으로 빠져나오며 여성 암 사망 위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민선 교수는 "서구권 연구 결과를 아시아 인구집단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식습관과 생활 환경을 고려한 성별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만으로 육류 섭취와 암 사망률 간 직접적 인과관계를 단정 짓긴 어렵다고 전했다. 조리법과 장기적 식습관 변화 등을 반영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단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