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 통한 전파 급증" 약도 안 통하는 '슈퍼 성병' 확산...영국 '비상'

정심교 기자
2026.07.21 18:00

[정심교의 내몸읽기]

세균성 이질을 일으키는 원인균인 '시겔라'. /자료=게티이미지뱅크

영국에서 세균성 이질이 동성애자·양성애자 사이에서 '항문성교'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흔한 감염경로(오염된 음식 섭취)를 벗어난 건데, 항생제 공격에도 죽지 않는 내성균이 세(勢)를 불리면서 전파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과연 세균성 이질은 어떤 병이고, 새로운 경로로 감염될 경우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을까.

세균성 이질(痢疾)은 감염성 대장염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선 법정 감염병의 제2급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세균성 이질은 시겔라(Shigella)라는 세균이 일으킨다. 시겔라는 물에서 2~6주, 우유·버터에서 10~12일, 과일·채소에서 10일, 옷에서 1~3주, 습기가 있는 흙에서 수개월, 위액에서 2분, 60도(℃)에서 10분간 살아남는다.

그간 세균성 이질은 시겔라 보균자가 대변을 본 후 손톱 밑, 손을 깨끗이 씻지 않았을 때 요리한 후, 해당 음식을 오염시켜 간접적으로 전파하는 경로가 흔했다. 비위생적인 국가에서 시겔라에 오염된 식수·우유를 마셨거나, 대변 접촉을 통해 시겔라가 묻은 바퀴벌레·파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 세균성 이질이 유행하는 경로는 이와 다르다. 최근 국제학술지 '란셋 감염병 저널'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2015~2020년 항문성교를 통해 시겔라균이 전파되는 '새 감염 경로'가 매년 평균 15%씩 급증했다. 또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이 집계한 지난해 항문성교 관련 시겔라균 감염 건수는 2560건에 달했다.

세균성 이질은 1~7일간 잠복하는데, 이 기간에도 고열과 구역질, 때로는 구토, 경련성 복통, 점액성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인다. 잠복기가 끝나면 전염기에 돌입하는데, 전염기는 급성 감염기부터 대변에서 균이 발견되지 않는 기간, 즉 발병 후 4주 이내다. 간혹 시겔라 보균 상태가 수개월 이상 이어질 수도 있다.

세균성 이질을 확진하려면 대변 배양 검사 후 병원체를 확인해야 한다. 이때 의심되는 환자의 대변·직장에서 채취한 대변 검체를 수송 배지에 넣어 보건소에 배양 검사를 의뢰해 이질균을 분리해 내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느 정도 감염이 진행되면 초기에는 물설사(수양성 설사)를 하다가 점차 피·점액이 섞인 대변을 본다. 세균이 침입한 결과물로 피가 대변에 섞여 나오지만(혈변), 전체 환자 3명 중 1명에게서는 혈변 없이 물설사 양상만 나타난다. 증상은 4~7일이 지나면 회복하지만, 잦은 설사로 탈수 증상이 나타나기 쉬우며, 종종 합병증으로 독성 거대결장증(결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병)이나 용혈성 요독증후군(미세혈관병성 용혈성 빈혈, 혈소판 감소증, 급성 신부전이 동시에 나타나는 질환)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세균성 이질은 항생제로 치료한다. 그런데 주목할 건 이번 영국에서처럼 항문성교로 시겔라에 감염된 경우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기 쉽다는 것. 21일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항생제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내성이 생긴 시겔라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가진 플라스미드를 통해 다른 시겔라균으로 내성 능력을 전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스미드는 균이 스스로 복제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유전물질을 가리킨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항생제 내성을 획득한 시겔라'에 감염된 사람이 1명 또는 여러 명과 항문성교를 한 경우, 감염자의 성파트너가 또 다른 사람과 항문성교를 하는 경우 '내성이 생긴 시겔라'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영국에선 동성애자·양성애자 사이에서 항생제 내성이 생긴 시겔라가 확산하면서 세균성 이질에 대해 '슈퍼성병'이란 수식어까지 생겼다.

시겔라는 전파력이 강해, 가구 내 2차 발병률이 10~40%에 달한다. 이는 항문성교를 통해 감염된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전염되기 쉽다는 의미다. 어린이가 시겔라에 감염되면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합병증으로 라이터증후군(Reiter syndrome·반응성 관절염)이 나타나기도 한다. 라이터증후군은 만성관절 류마티스성의 다발성 관절염에 요도염, 귀두염, 결막염, 구강내궤양, 농누성 각화증등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서울=뉴스1) 최지환 기자 = 13일 오후 제27회 서울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인근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6.6.13/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최지환 기자

만약 세균성 이질 감염자와 항문성교하기 전, 관장을 깨끗이 해도 감염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엄 교수는 "관장은 장내 배설물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장내 세균까지 없앨 수는 없다"며 "시겔라는 매우 적은 양(10~100개)으로도 감염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있어, 시겔라 보균자와 항문성교하면 아무리 관장했어도 성관계 중 전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항문성교 전 콘돔을 착용하면 세균성 이질을 예방할 수 있을까. 엄 교수는 "전파력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100% 예방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균성 이질 환자는 격리 치료가 원칙이다. 치료 방법으로는 탈수를 치료하는 '수액 요법', 시겔라를 죽이는 '항생제 치료법'이 있다. 항생제 투여는 이환 기간과 중증도를 줄이고, 세균 배설 기간을 단축한다. 1차 치료로 시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을 사용할 수 있으며, 2차 치료로 세프트리악손(ceftriaxone)이나 아지트로마이신(azithromycin)을 사용할 수 있다. 항문성교 후 세균성 이질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 진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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