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만 되면 농촌에서 해충을 죽이기 위해 농약(살충제)을 더 많이 뿌린다. 그런데 이런 살충제에 노출되면 당뇨병과 갑상선 질환 같은 대사·내분비계 만성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대규모 종합 분석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 보건환경융합과학부 강지승 교수 연구팀(김민성 연구원, 경희대 연동건 교수, 황영택·손예준 연구원)은 53편의 메타분석 연구에서 보고된 총 235개의 살충제 노출–건강 결과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국제 학술지 '위험 물질 저널(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랬더니 △DDE(디클로로디페닐디클로로에틸렌) 노출에 따른 당뇨병 위험이 51% 증가했고 △유기염소계 살충제 노출에 따른 갑상선기능저하증 위험이 23% 커진 사실이 확인됐다.
DDE는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 분해·대사되면서 생기는 물질로, 수십 년이 지나도 체내 지방 조직이나 환경에 장기간 잔류해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대표적 잔류성 화학물질이다. DDT는 과거 방역 및 농약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됐지만 독성과 잔류성으로 현재는 사용이 금지된 강력한 유기염소계 살충제다. 하지만 DDT의 분해 산물인 DDE가 토양과 농축산물, 체내 지방에 장기간 잔류하면서 여전히 사람의 내분비계와 대사 조절 기능을 교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에서 입증됐다.
연구팀은 과거 잔류 물질과 현재 쓰이는 다양한 살충제 성분의 전신 질환 위험도 함께 제시했다. 대표적 제초제 성분인 파라콰트 노출은 파킨슨병 발생 위험을 1.64배 높였으며, 일반 살충제 노출도 알츠하이머병(1.32배)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1.46배) 위험 증가와 연관성을 보였다. 호흡기 질환에서는 소아 하기도 감염과 특발성 폐섬유증 등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났다.
취약 계층인 태아와 아동기의 노출 위험도 구체적 수치로 밝혀졌다. 하위그룹 분석 결과, 임신 중 살충제에 노출될 경우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발생 위험이 1.97배로 2배 가깝게 뛰는 것으로 관찰됐다.
연구를 진행한 강지승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살충제 노출의 건강 영향을 특정 질환 하나에 국한하지 않고 대사·내분비계, 신경계, 호흡기계, 암 등 인체 전반에 걸쳐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기존 근거의 신뢰성까지 체계적으로 평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DDE와 유기염소계 살충제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근거가 확인된 만큼, 장기간 체내와 환경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물질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노출 저감 정책을 마련하는 데 과학적 근거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