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유 없는 반항?…그리스가 채권단과 맞서는 이유

김신회 기자
2015.06.16 11:52

FT 기드온 래치먼 칼럼, 그리스-채권단 대립 '치킨런' 닮은꼴… 4가지 게임가설 제기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은 친구와 '치킨런'(chicken run) 게임을 벌인다. 자동차로 절벽을 향해 내달리다가 차에서 더 늦게 내리는 사람이 이기는 무모한 시합이다. 영화에서는 제임스 딘의 친구가 끝내 자동차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드온 래치먼 칼럼니스트는 16일자 칼럼에서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채무협상이 '이유 없는 반항'의 치킨런 게임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리스는 채무협상에 실패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불가피한 처지다. 디폴트는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그렉시트)을 촉발할 수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 1월 집권해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아테네대 교수를 재무장관으로 기용했을 때만 해도 그리스의 새 협상전략에 대한 기대가 컸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게임이론' 전문가다. 하지만 그리스는 채권단과 평행선을 달리며 채무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몇 개월 새 그리스는 돈이 바닥났고 우호세력들도 하나둘 등을 돌렸다.

래치먼은 그리스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배경이 된 4개의 게임가설을 제시했다.

1. 아직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가 허세를 부리는 건 협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수 있다. 치프라스 정부는 유럽연합(EU)이 결코 유로존의 붕괴를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EU에는 큰 정치적 타격이 될 뿐 아니라 그렉시트 충격의 금융시장 전이 위험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U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전에는 큰 양보를 하지 않을 전망이다. EU가 막판에 다다랐다고 판단하려면 그리스에서 더 큰 혼란이 발생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2. 잘못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스 정부가 상황을 오판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치프라스 총리와 그가 이끄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는 EU 정치권에서 풋내기에 불과하다. 시리자는 그리스 총선에서 내세운 반긴축 주장이 EU 정치권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FT는 시리자와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 몇 개월간 EU의 정치현실에 대해 쓰라린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리자가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위태로울 만큼 늦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3. 모든 게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 정부의 변덕스러운 협상 스타일은 그리스 내부의 혼란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시리자의 미숙함과 전략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리자는 좌파 세력의 연합체다.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수용하면 시리자가 분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총선에서 시리자의 반긴축 공약에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도 등을 돌릴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의 채무협상 합의는 치프라스 총리의 정치 경력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4. 유로존을 떠나고 싶어 한다.

시리자 안팎의 학자와 정치인들 사이엔 궁극적으로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그리스가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채무 일부나 전부를 갚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유로존 퇴출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 강경론자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돼 새로운 변동환율제 통화를 도입해야 국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리자 내부에서도 일부는 유로존 및 EU 체제가 자신들이 거부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래치먼은 그리스에는 사실상 4개의 게임가설이 모두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정부는 EU가 끝내 한발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반대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치프라스 총리의 변덕스러운 태도는 그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 시리자 안팎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일지 몰라도 채무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늘어난 것은 확실하다는 지적이다.

래치먼은 또 4개의 게임가설이 그리스와 맞서고 있는 독일과 EU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했다. 우선 독일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건 그리스가 항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 있다. 또한 독일은 그리스의 이성적인 행동을 기대했다가 이제야 오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독일 정부도 국내 정치에 발이 묶여 있을 수 있고 독일 정부, 특히 재무부 내에도 상당수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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