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4년간 대만을 이끌 최고 지도자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대만은 8년 만에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이번 정권 교체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양안 관계의 변화 여부다.
◇대중국 관계 어떤 변수 맞을까
차이잉원 당선자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양안 관계 질문이 나올 때마다 ‘현상유지’라고만 할 뿐 구체적 답변은 피해왔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차이잉원 정부가 이전 국민당과 달리 중국과 관계 개선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시진핑 국가주석과 역사적 만남을 가진 국민당 마잉지우 총통과 달리 민진당은 중도 좌파 계열로 차이잉원 당선자는 중국에 다소 비협조적으로 양안 정책을 펼 수 있다.
민진당은 양안관계의 가장 큰 상징인 ‘92 컨센서스’ (일명 구동존이: 1992년 홍콩에서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과 명칭은 각각 의사에 맡기자고 합의한 것)도 형식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차이잉원 당선자는 지난해 말 TV 합동 대선 토론회에서 구동존이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이런 발언이 양안관계 불안정을 걱정하는 민심을 껴안으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차이 당선자는 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만의 자주성을 중시하는 외교정책을 펼 전망이다. 차이 당선자가 대선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 ‘대만을 밝혀라’도 대만 주체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차이 당선자가 외교 정책 공약으로 내건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포함한 미· 일과의 협력 강화도 중국을 얼마든지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현재 수교국가가 22개국에 그치는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를 차갑게 뒤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차이잉원 당선자가 양안관계를 뜨듯미지근하게 방관할 순 없다는 진단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만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주며 포용하는 정책을 펼 지도 주목된다. 중국은 차이 당선자의 대만 주체성 발언이 대만 독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불허할 방침이다. 중국 관영언론은 대선 직전까지 차이 당선자의 불분명한 양안관계 입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뒤 양안 관계가 어떻게 바뀌느냐는 중국 대 미국·일본과의 관계까지 얽히며 아시아 정세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차이잉원 정부의 집권 초기 대중국 외교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살리기 총력전 펼듯
만약 양안 관계가 악화되면 차이잉원 정부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양안 관계 냉각 시 중국인 관광은 물론 중국 자본의 대만 투자 등 양안 경제협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중국(홍콩 포함)이 대만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2014년)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특히 대중국 수출이 대만 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한국(14%)을 훨씬 앞선다. 그만큼 중국에 절대 의존하는 경제구조다. 중국 대신 일본과 기술 제휴나 투자 협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고, 베트남 등지로 생산기지를 분산시키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차이잉원 당선 배경은 국민당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가 핵심이다. 국민당은 지난 8년간 빈부 격차와 청년 실업, 부동산 가격 급등, 임금 인상 적체, 경제시스템의 구조조정 실패 등 경제 관련 실책이 유난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만해도 10.6%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2014년 3.77%에서 지난해는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차이잉원 정부는 앞으로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무역시스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은 물론 미국과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차이 당선자의 경제 살리기는 걸림돌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양안관계 불균형 개선을 위해 TPP 가입을 원하고 있지만 미국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은 대만의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농민단체 반대로 이를 밀어부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TPP 가입도 야당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민감 사안이다. 예전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대만보다 TPP 가입을 먼저 하려고 한다면 대만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지지부진한 양안 상품·서비스무역협정 발효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대만은 중국과 2010년 경제협력기본협정( ECFA) 서명 후 이듬해 상품과 서비스의 조기자유화프로그램(EHP)까지 발효했다. ECFA는 사실상 FTA에 해당하는 것으로, EHP를 포함해 양국 제품의 관세인하 효과를 조기 달성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만 농민들과 대학생들의 반대로 ECFA의 후속 협정 격인 양안상품·서비스무역협정은 입법원(국회) 승인을 받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만약 이 협정이 입법원에서 통과된다면 대만은 GDP가 80억달러 늘어나고 산업생산액은 315억 달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협정이 승인되면 대만 경제가 사실상 중국에 점령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 젊은 층들이 심각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협정은 중국 본토인이 대만에서 일정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본토의 가족을 대만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차이 당선자는 양안협정 감독 조례를 별도로 만들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차이 당선자는 그러나 중국 자본의 대만 기업 인수나 400만명이 넘는 중국 관광객 유치는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대만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중국인은 40%를 차지한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한-대만 교역 규모는 연간 300억달러 수준으로 각각 5~6위의 주요 교역국이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은 이중과세 방지협정이나 투자보장협정 등이 체결되지 않아 양국 교역의 급신장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한-중 외교 관계를 더 우선시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도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한-대만 항공협정을 개정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전환점이 엿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천-타오위앤 항공편이 매주 28편에서 46편으로 늘었고, 추가로 김포-가오슝 구간 직항도 주 7편 신설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차이 정부 집권 이후 양국 민간 교류는 더 늘어나고, 경제 교류도 확대될 전망이다.
차이 당선자가 한국에 우호적인 것도 한-대만 경제 교류 확대에 청신호다. 차이 당선자는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대만판 자서전에 추천 글을 쓰는 등 같은 여성 지도자로서 박 대통령에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 박한진 관장은 “현재 한국이 대만 경제력을 크게 앞서고 있어 차이잉원 정부가 배우려는 자세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FTA 체결 이후 미국에서 한국산이 약진한 사례 등은 차이잉원 정부의 중점 연구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