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8일(현지시간)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에 합의하면서 국제유가가 6% 급등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 구체성이 결여돼 오는 11월 말 OPEC 총회를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OPEC은 이날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4시간 반에 이르는 논의 끝에 산유량을 하루 평균 3250만-3300만배럴로 줄이기로 했다. OPEC의 지난달 산유량(하루 3324만배럴) 기준으로 감산 규모가 하루 24만-74만배럴쯤 되는 셈이다.
한 소식통은 OPEC이 곧 러시아 등 다른 주요 산유국과도 감산 합의 내용을 논의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OPEC의 감산 합의 소식은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시장에서는 이날 회의를 앞두고 OPEC이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행동에 나서주길 바랐지만 실제로 감산 합의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이날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전날보다 5.9% 오른 배럴당 48.69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OPEC이 2008년 이후 첫 감산에 합의한 게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본다.
사우디는 그동안 국제유가 급락에 증산으로 맞섰다.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특히 경쟁자로 급부상해 원유시장의 공급과잉 우려를 촉발한 미국 셰일업계를 압박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러나 사우디의 강경 대응에 저유가 기조는 더 확고해졌고 그 사이 사우디는 사상 최악의 재정적자를 떠안았다. 더 이상 저유가 기조를 두고 볼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사우디와 갈등을 빚어온 이란의 입장도 다소 누그러졌다. 이란은 올해 국제 제재에서 벗어나 원유시장에 복귀했다. 제재 이전인 2011년 수준의 산유량을 회복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OPEC의 산유량 제한 움직임에 번번이 반기를 들었다. 이란은 지난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모임에도 불참했다. 사우디가 당시 이란의 불참을 문제 삼으면서 시장에서 기대한 산유량 동결 합의가 무산됐다.
이란이 이날 OPEC의 감산 합의에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상 국제 제재 이전 수준의 산유량을 회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2011년 하루 400만배럴 이상을 생산했는데 지난달 산유량이 하루 360만배럴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증산 능력으론 이미 최고점에 이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날 합의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누가, 얼마나 산유량을 줄일지 정해지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오는 11월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공식 총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각국이 갈등을 빚으면 이번 감산 합의는 언제든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이날 이날 각국이 얼마나 감산할지 정할 위원회가 구성돼 그 결과를 11월30일 빈 총회에서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 퀴글리 스트라타스어드바이저 에너지시장 책임자는 "OPEC 합의에 흥분하기는 너무 이르다"며 "중요한 건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이란 석유장관 입에서 산유량을 제재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클 코헨 바클레이스 에너지 상품 리서치 책임자는 OPEC의 합의가 현상유지와 다를 바 없다고 봤다. 그는 사우디가 여름이 지난 뒤에 산유량을 줄이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이란이 여전히 하루 400만배럴 수준의 산유량 회복을 추진하고 정정불안 등으로 한동안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던 리비아와 나이지리아가 산유량을 다시 늘리고 있는 만큼 OPEC의 산유량이 감산을 통한 목표치를 하루 100만배럴가량 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OPEC이 하루 70만배럴 정도 감산할 경우 빠르면 연내에 공급과잉 물량이 해소될 것으로 봤다. 재고가 줄면서 국제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일각에서는 사우디를 비롯한 OPEC 회원국들이 이미 정점에 도달한 산유량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 오히려 감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지오반니 슽타우노보 UBS 애널리스트는 "사소한 게 문제가 된다"며 "OPEC이 11월 총회에서 감산 방안을 결정해도 내년에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또 OPEC의 감산이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OPEC이 감산으로 국제유가를 띄어 올리면 미국 셰일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셰일업계는 최근 저유가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산유량을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