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언론을 보면 그랬다. 역사상 가장 흠결 많은 두 후보의 추악한 싸움이라는 평가를 듣는 미국 대선 얘기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차이 외에 정치가와 기업가, 인사이더(워싱턴 정가에 20년 이상 머물며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 역임)와 아웃사이더(정치경력 1 ~ 2년에 불과) 등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사전투표는 한창 진행 중이다. 실제 대통령 선거(현지시간 11월8일)를 코앞에 둔 지난주 금요일까지 AP통신과 독일 여론조사기관 GfK의 공동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51%)이 트럼프(37%)에게 14%포인트 차이로 크게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지지율에서 그럴뿐 당선확률은 더 명확했었다.
선거 예측 모델의 클린턴 후보 승리 가능성을 종합(26일 기준)한 결과 평균 9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게임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28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추가 조사에 착수하면서 판도가 뒤흔들린 것이다. 미국 ABC/워싱턴포스트(WP)가 FBI의 조사방침 이후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25~28일·1160명) 클린턴은 46% 지지율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단 1% 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FBI의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결정에 따른 영향을 반영한 결과다. 일주일 전 같은 조사에서 클린턴이 50% 지지율로 트럼프를 12%포인트 차로 앞섰던 것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클린턴 후보를 중심으로 당선 인사를 쓸 태세였던 민주당쪽은 국장이 공화당원인 FBI의 의도에 대해 정치에 개입하려는 법 위반이라는 항변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가 막말을 일삼고 세금 탈루, 여성비하 스캔들 등으로 오명에 휩싸여있지만 그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들이 분명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인 저소득층들에겐 트럼프가 어필하는 강점이 적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트럼프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쓴다”며 그의 공감 능력을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FBI의 조사에도, 여론조사결과의 부침에도 선거인단 구성상 클린턴의 승리를 점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긴 하다. 아직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미국 대선에서는 산사태와 같은 일방적 승리를 ‘landslide’(압승)이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landslide 는 두차례가 꼽힌다. 1972 년 1964 년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과 린든 존슨의 승리를 가장 현격한 차이의 승리라고들 한다. 1964년 대선에선 민주당의 린든 존슨(선거인단 486명) 후보가 공화당의 대선주자 배리 골드워터(52명)를 큰 차이로 눌렀다. 1972년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도 52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17명)에게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압승의 기쁨에 취하면 뒤탈이 따르기 마련이다. 존슨은 전임 대통령 케네디의 정책을 이어받아 민권법 등을 성사시키며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구호를 현실화시켰다. 하지만 현재 그는 베트남전에 미군을 증파한 호전적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닉슨은 베트남전 철군과 핑퐁 외교(미-중 수교) 등의 성과를 냈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대통령으로 주로 연상된다. 대승의 추억에 취해 떠나가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실세로 꼽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게이트로 정상적인 통치행위가 불가능한 정도다. 민심의 산사태(landslide)와 쓰나미에 발가벗겨진 최고권력자의 뒷모습은 초라했다. 역대 최고의 대승을 거둔 2년 뒤 대통령 닉슨은 1974년 사임연설을 이렇게 맺었다.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어야 했습니다.” 42년 뒤 한국의 대통령과 비선실세에게 최우선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