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전 닛산회장은 왜 '레바논'으로 도주했을까

정인지 기자
2019.12.31 16:08

변호사 "곤 전 회장 여권, 변호인단이 갖고 있어"… 재판 진행 어려울 듯

지난 4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보석으로 일본 도쿄구치소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사진=AFP

"나는 지금 레바논에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31일 오후(한국 시간 기준) 미국 대변인을 통해 자신은 레바논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출국이 금지된 상태에서 곤 전 회장이 레바논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곤 전 회장 "정치적 박해 받았다" 주장

곤 전 회장은 성명서에서 일본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더이상 유죄라고 전제하고, 차별이 만연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부당한 일본의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불공정하고 정치적인 박해로부터 도망쳤다"며 "드디어 미디어와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돼 다음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추가적으로 입장을 밝힐 뜻을 시사한 것이다.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소득 축소신고, 특별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그는 2017년까지 8년 동안 유가증권보고서에 자신의 보수를 약 91억엔 축소 기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오만 및 사우디아라비아에 송금한 것과 관련해서도 특별배임 혐의가 적용돼 기소됐다. 곤 전 회장은 그러나 혐의를 부정하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고 주장해왔다.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구속됐다가 지난 4월 일본 도쿄 내에 거주할 것을 조건으로 보석됐다. 당연히 출국은 금지됐다. 법원의 명령으로 모든 여권은 변호사에게 맡겼다. 보석 기간 동안 곤 전 회장은 컴퓨터, 스마트 폰 등 인터넷 이용도 제한 받았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그는 최근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재판 기록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여권 없이 출국…경로 묘연

곤 전 회장의 출국 경로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을 통해 29일 밤 터키에서 개인 제트기를 타고 레바논에 입국했다고 보도됐을 뿐이다.

다만 그는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NHK 취재에 따르면 레바논 치안 당국자는 곤 전 회장이 입국 당시 '카를로스 곤'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일본 출입국 기록에도 곤 전 회장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곤 전 회장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단 중 한 명인 히로나카 준이치로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곤 전 회장의 여권은 아직도 변호인단이 보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도 사실 이외의 내용을 모른다"며 "앞으로 정보가 들어오면 법원에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일본 외무성 고위관계자는 "(출국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출국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우리가 사전에 파악했다면 법집행기관에 통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법무성, 검찰 관계자도 "사실 확인 중"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레바논, 범죄인 인도조약 없어

곤 전 회장은 레바논, 프랑스, 브라질 등 다국적을 갖고 있다. 레바논은 곤 전 회장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6살에 레바논으로 이민을 왔다. 곤 전 회장은 닛산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종종 레바논을 방문해 사회 봉사 활동을 펼쳤다. 때문에 레바논에서는 곤 전 회장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상황이다. 레바논 정부는 지난해 11월 곤 전 회장이 체포되자 베이루트에 주재하는 일본대사를 호출해 체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도쿄 구치소에 구금돼 있을 때도 레바논 대사관 관계자가 자주 면회를 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본은 레바논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이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구해도 레바논 측이 응하지 않으면 체포하기 어렵다. 외교 경로를 통해 레바논 정부 측에 계속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15억엔의 보석금 몰수 가능성 높아

보석 취소 여부와 향후 재판 일정 등은 현재 미정이다. 도쿄지방법원은 곤 전 회장이 실제로 출국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곤 전 회장의 변호인단과 검찰에 연락을 취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출국했다면 보석금 15억엔은 몰수될 가능성이 높다.

곤 전 회장의 첫 공판은 2020년 4월께로 조정 중이었다. 공판 전 정리 절차에 피고 출석이 필수는 아니지만 변호인단과 의사 소통을 하거나 협의 하기가 어려워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판 자체도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일부 경미한 범죄 등을 제외하고는 공판 기일에 피고인 본인이 법원에 출두해야 개정 할 수 있다. 곤 전 회장이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공판이 열리지 못하고, 사건 심리는 사실상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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