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년, 세계는 군비 늘리는 중…"우크라가 지면 더 큰일"

박가영 기자
2023.02.18 06:10

[MT리포트]우크라 전쟁 1년이 남긴 것 : '핵폐기' 후 뒤통수, 우크라 불행에 핵 확산 위기

[편집자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1년이다. 믿기 어려운 침략 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를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고, 서방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등 신냉전 체제의 가속을 불렀다. 언제 또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전 세계 군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꿔 놓은 국제정세와 전망, 기업들과 한국이 직면한 과제를 짚어본다.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이지움에서 한 군인이 해질녘 파괴된 탱크 주위를 걷고 있다. /로이터=뉴스1

2022년 2월24일, 세계 평화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고, 안보 불안은 냉전 이후 최고조로 치달았다.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각국은 너도나도 국방비 증액을 선언하고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비 확장과는 거리를 둬왔던 독일과 일본도 군사력 확장에 힘을 쏟는다.

핵 안보도 흔들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금기시됐던 핵 위협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한국과 대만 등에서는 자체 핵무장론까지 흘러나온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군비 확장이 또 다른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 '안보 딜레마'에 빠진 세계, 출구는 있을까.

"우크라 보니 불안하네…" 군사력에 '투자' 나섰다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주요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방 예산부터 크게 늘리고 있다. 위기감이 국방력 강화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이미 방위산업체들이 특수를 누리는 상황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국의 2023년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국방 예산은 8580억달러(1118조원)로 전년도 대비 10% 증가했다. 미국 국방비는 2011년도를 정점으로 줄었다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2016년도부터 다시 늘었는데, 증가세로 돌아선 뒤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지난해 국방 예산을 7% 증액했다. 액수로 따지면 미국 다음으로 많다. 중국의 국방비는 경제성장에 비례해 계속 늘었고 그 결과 지난 20년간 10배 급증했다.

그간 국가 안보 정책 강화에 소홀했던 유럽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전범국 독일의 움직임이다. 독일은 그간 국내총생산(GDP)의 1%가량을 국방비로 지출해왔는데, 이 비율을 2%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각종 기금 지출을 포함하면 국방비가 전년보다 17%가량 증액되는 셈이다. 지난해 6월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1000억유로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조성해 곳간을 채웠다.

과거 소련의 침공 경험이 있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방위력 증강을 위해 내년 군사비 지출을 기존의 두 배 이상인 1380억즈워티(약 40조원)로 늘리고, 병력도 5년 안에 현재 14만3500명에서 30만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강할 방침이다.

또 다른 전범국 일본은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재무장에 나섰다는 평가다. 방위비는 기존 GDP 1% 이내에서 2027년까지 2%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 목표가 실현되면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2023 회계연도 방위비는 전년보다 26% 증액한 6조8000억엔으로 편성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군사력 확장이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부채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안킷 판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CNN에 "(일본의 움직임으로 인해) 북한, 중국 등이 인지하는 위협이 강화할 것"이라며 "동아시아에서 이런 역학 관계가 더 심화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아시아에는 급변하는 군비 경쟁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4.4% 늘린 57조143억원으로 잡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FPBBNews=뉴스1
전쟁이 불러온 '핵위기'…"누가 이기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의 핵 군축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핵무장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핵보유국 러시아에 침공당하는 걸 목격하면서다.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지만,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으로부터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핵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1996년 6월에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했다.

대만에서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면서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핵무장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대만도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오홍샹 전 대만 국방대 교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도 핵무기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면서도 비슷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바로 핵 보유의 중요성이다. 한국에는 핵보유국이 미보유국인 이웃나라를 침공했을 때 핵전쟁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한 국제사회가 개입을 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북한에는 자체적인 핵 억제력 보유의 이점을 보여줬다.

국내에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이 확산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핵무기 통제조약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New START)도 답보 상태다.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는 이 협정에 따른 핵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 하는 만큼, 뉴스타트 조약 이행과 추가 연장 논의에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긴장 고조로 지난 35년간 감소했던 전 세계 핵무기가 향후 10년에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가 세계 핵전략의 향배를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싱크탱크 벨퍼센터의 마리아나 부제린 연구원은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면 '핵 아마겟돈' 없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패하면 세계 군축 비확산 체제로 가는 길은 끝장날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군축 협상에서 등가 맞교환 방식을 고집하는 대신 상호 수준에 맞는 합의를 이뤄내는 것도 방법이란 것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핵 전문가 헤더 윌리엄스 박사는 포린폴리시를 통해 "미국이 미사일 방어체계 운용을 제한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미사일 투발 수단을 제한하는 방안도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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