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가 20만명의 병력과 미사일·탱크 등을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2위 막강 군사력을 갖춘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면 72시간 내에 국방순위 25위의 우크라이나가 함락될 것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간 지 오래다. 전쟁 초기 국제사회의 중재로 이뤄졌던 평화협상이 중단된 지도 한참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나기 전에 마주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세계 경제는 에너지와 식량 위기로 신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난민이 발생했고, '언제든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러시아의 위협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출구 없는 출혈 전쟁'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전장으로 미국 등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 진영이 양분돼 세계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 등을 위해 '특수 군사작전'을 감행한다고 주장했다. 무서운 속도로 우크라이나 북·동·남쪽 국경을 동시에 넘은 러시아군은 체르노빌·자포리자 등 대규모 원전 시설을 점령하는 등 초기 기세가 좋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중심으로 남부 헤르손까지 점령지를 점차 확대해 나갔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조직력은 얼마 못 가 밑천이 드러났다. 예상치 못했던 대규모 병력 손실로 지휘·통제권도 무너졌다.
세계를 놀라게 한 건 예상 외로 허술한 러시아군의 조직력만이 아니었다. 수도 키이우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과 투지에 국제사회는 감탄했다. 동맹이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미국 등 서방국들의 무기 지원이 잇따랐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을 앞세워 하르키우·헤르손 등 러시아에 빼앗겼던 영토를 속속 탈환하는 등 전세가 뒤집혔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급해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9월말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등 4개 지역의 강제 합병을 선언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인정 받지 못했다. 병력 손실이 커 예비군 부분 동원령을 통해 전장에 30만명을 긴급 투입했지만 전세 역전에는 실패했다.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상당수 도시가 폐허로 변했고, 인명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지난달 말 기준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1만8657명(사망자 7110명)에 달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해외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1790만명이다. 러시아도 피해가 커 서방에서는 러시아군 약 20만명이 숨지거나 부상당했다고 추정한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반러시아 진영의 국제사회는 전쟁 발발 직후 군사·경제·외교·정치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 데 뭉쳤다. 40여개국 국방 당국자들이 모여 우크라이나 방어 지원 협의체를 만들었고, 오랜 기간 중립국 지위를 지켜왔던 스웨덴·핀란드는 나토 가입을 서둘렀다.
경제 분야 초강력 제재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퇴출 조치로 미국·영국 등 은행에 예치했던 달러 자산이 묶이면서 지난해 러시아는 104년 만에 국가부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 사업을 철수하거나 중단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의약품 등 필수 수입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글로벌 기업들이 단기간에 러시아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도 고립됐다. 러시아는 유엔인권위원회(UNHRC),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등 유엔 산하기구 이사국에서 줄줄이 자격 정지를 당했다. 유럽 주요 국가와 일본 등은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고, 미국은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은행 계좌를 폐쇄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북한, 이란 등이 위기에 처한 러시아의 든든한 뒷배로 떠올랐다. 서방국의 보이콧으로 판로를 잃은 러시아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중국과 인도가 지속적으로 수입하면서 러시아 경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과 이란 등은 무기 등 군사장비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러시아를 돕고 있다.
지난해 말 한때 러시아군 이탈, 푸틴 대통령 리더십 붕괴 등으로 러시아 내부 분열이 일어나 조만간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며 이 같은 종전 시나리오는 다소 힘을 잃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상이 지난해 4월 2일을 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전쟁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전쟁 초기 양국의 중재를 위해 나섰던 주요국 지도자들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손을 놨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바버라 잔체타 전쟁학과 교수는 "올해 말까지도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잠재적인 평화협상을 위해선 적어도 한쪽의 핵심 요구가 바뀌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닉 카터 전 영국 국방 참모총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전투력이나 능력이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며 "앞으로 2~3년간 전쟁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2024년 미국 대선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이미 미 공화당과 일부 국민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지원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상에서의 어떤 군사작전보다 미국 대선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중단한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저항할 여력이 없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