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찾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대선 사전 투표 현장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미국 독립선언이 이뤄진 곳이자 건국의 성지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시청 앞 광장에선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렀다. 펜실베이니아주는 9월16일부터 대면 사전투표를 시작했는데 이날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대의 유권자들이 투표구를 통과해 전체 표심을 좌우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었다.
일단 출입구의 신원확인 절차는 상당히 삼엄했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진행된 소송 과정에서 약 68만표의 우편물과 투표용지가 불법 처리됐다는 주장을 펼치며 논란을 일으킨 여파가 미친 듯 했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 경관 자넷(36)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폭발물이나 금속 무기 적발이 가능한 탐지기를 거쳐야 사전 유권자 등록과 우편 투표 신청 등의 권리행사가 가능하다"며 "허가를 받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펜실베이니아 여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미국 대선에서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걸린 경합주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당초 민주당 우세지역이었으나 2016년에는 트럼프(공화당)에게 4만여표를 더 줬고, 2020년에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8만여표를 더 밀어주며 승부가 갈리게 만들었다.
현재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 지지율은 동률인 상황이다. 정치권은 투표율에 따라 대선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대선의 투표율은 55.7%에 머물러 트럼프가 승리했지만 2020년엔 66.9%로 치솟아 바이든에게 백악관 티켓을 안겼다. 뚜렷한 지지후보가 없는 부동층의 투표여부와 결집효과가 펜실베이니아주의 판세를 가를 수 있다는 의미다.
'샤이 트럼프' 유권자들의 결집도 이번 선거 변수로 꼽힌다. 이민자 2세 유권자로 정면 사진촬영을 사양한 크리스티나(34)는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일원이고, 트럼프는 이미 대통령으로서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하지만 반드시 1명에 투표해야 한다면 자유시장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트럼프에 마음이 기운다"고 귀띔했다.
앞선 2차례 선거에 비해 이들의 결집 가능성은 다소 낮다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13일 펜실베이니아 유세에서 암살 시도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들의 결집은 굳건해 보였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가 공화당 전당대회를 '집안잔치'로 구성하고, 지난 9월 TV토론에서 이민자 혐오와 관련한 낭설을 주장하며 해리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형사 유죄판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보수주의자들의 결집을 막는 요인이다.
아이비리그 펜실베이니아대(UPenn)에서 만난 젊은 대학생 중에는 해리스 지지자들이 확실히 많았다. 경영대에 다니는 2학년생 제임스 러셀(20)은 "트럼프가 내세운 관세 정책은 가까스로 잡아놓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망쳐놓는 결과를 낼 것"이라며 "두 후보의 경제정책은 모두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해리스 쪽이 좀 더 낫다"고 말했다. 토바 스미스(22)는 "트럼프가 미국의 수준을 반세기 전으로 되돌렸다"며 "그가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놔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11월5일 미 대선의 승부는 펜실베이니아(19명) 미시간(15명) 위스콘신(10명) 조지아(16명) 노스캐롤라이나(16명) 애리조나(11명) 네바다(6명) 등 7개 경합주의 선택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 특성상 전국 총 득표수에서 이긴다고 해도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투표에서 질 경우 결과가 뒤바뀔 수 있어서다.
해리스와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주 민심을 잡으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고, 지지율 격차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 투표 현장에서 만난 파텔 사라(23)는 "펜실베이니아주 가운데서도 대도시인 필라델피아는 민주당 지지자가 80%를 넘는 수준"이라며 "다만 러스트밸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 등에 따라 함부로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