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토 빼앗겨도 이럴까"…전쟁 3년 우크라의 눈물 [dot보기]

윤세미 기자
2025.02.22 06:52

[우크라이나 전쟁 3년] ①가족 잃은 이들의 눈물

[편집자주] '점(dot)'처럼 작더라도 의미 있는 나라 밖 소식에 '돋보기'를 대봅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초등학교. 미사일 공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8살 어린이 수십명이 일사불란하게 연필과 교과서를 챙겨 지하대피소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글씨를 연습하고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기도 했다. 교사 리우드밀라 야로슬라브체바는 "전쟁 초기엔 사이렌이 울리면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울었지만 전쟁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로이터통신)

2024년 7월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벌어진 가운데 한 가족이 폭격으로 파손된 오마트디트 아동병원의 건물 지하에서 대피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24일(현지시간)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정확히 3년이다. 전투는 동부 전선에 집중되지만 전쟁은 우크라이나인의 삶 구석구석을 파괴했다. 잠든 새벽이건 출근길이건 시시때때로 공습 경보가 울린다. 주민들은 익숙한 듯 방공호로 대피한다. 그 사이 건물은 무너지고 자동차는 불에 탔다. 어제 만난 이웃은 폭격에 사망했다. 아빠와 남편, 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하거나 강제 징집돼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겪는다. 남은 이들은 매일 가슴을 졸이며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2년 전 만나 사랑을 키운 올라 체크노코바(46)과 예브헨 볼로샨(37) 부부도 그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둘은 틴더를 통해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볼로샨은 2개월 뒤 나라를 위해 입대를 결심했다. 볼로샨은 자폭 드론 조종사로 복무했다. 둘은 낮엔 문자로, 밤엔 드론 활동이 멈춘 시간 영상통화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체스노코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답장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불안한 기다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체스노코바는 자정 직전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지휘관의 전화였다.

니키타 본다렌코가 2월6일(현지시간) 학교에서 종이에 탱크를 그리고 있다. 그는 "아빠는 군대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는데 저는 특히 탱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라고 말했다. /로이터=뉴스1

전쟁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니키타 본다렌코(8)는 인생의 3분의 1을 전쟁과 함께 보냈다. 공습 경보가 울리면 가장 두꺼운 벽으로 가 몸을 웅크려 보호해야한다는 것도 배웠다. 집에 있을 때 동생을 데리고 그렇게 피신한다. 본다렌코는 로이터에 "나는 동생한테 '마샤, 미사일과 폭탄이 날아오는 거야'라고 설명하고 담요와 베개로 동생을 덮어줘요"라고 말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쟁으로 매주 16명의 어린이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 약 150만명이 전쟁으로 인한 우울증, 불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 건강 문제에 노출돼 있단 통계도 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길어진 전쟁에 지쳐간다. 미국과 러시아가 종전 협상을 시작했지만 정작 전쟁 당사자이면서도 협상 테이블에 자리를 얻지 못한 우크라이나인의 불안은 크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인 대다수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평화가 찾아올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지만, 이런 희망 비웃듯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포기해야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최근엔 대러 강경파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퇴진까지 압박할 태세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기념관을 찾은 마리나 이바시냐(30)는 NYT 인터뷰에서 "평화 협상을 믿을 수 없다. 우리에겐 좋은 일이 아닐 것 같다"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아버지와 남편을 잃었다.

2018년 7월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헬싱키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AFPBBNews=뉴스1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마리우폴에 살던 올레나 마트비엔코(66)는 이제 돌아갈 고향이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에 눈앞에 캄캄하다. 그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약 460만명의 피란민 중 하나다. 그는 "만약 미국이 영토 일부를 강제로 빼앗긴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싶다"면서 "그건 마치 사람의 팔다리를 억지로 잘라놓고 그냥 그렇게 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노했다.

마리우폴에서 키이우로 이주한 안나 물리키나(50)는 NYT에 "트럼프의 행보는 세상에 법과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준다"면서 "발밑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힘은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제 믿음의 기둥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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