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남자아이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칼로 찔러 죽였다. 경찰이 체포하러 간 아이의 집은 정원이 있는 2층 주택이다. 복도마다 걸린 가족사진과 잘 꾸며진 아이 방은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순진무구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울부짖고, 침대에서 오줌을 지린 채 경찰서로 끌려간 13살의 소년 제이미는 과연 억울한 누명을 썼을까. 경찰은 빠르게 살인 장면이 녹화된 주차장 CCTV를 공개한다. 충격에 빠진 건 제이미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수사 중인 형사와 소문이 퍼진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까지 모두 왜 제이미가 살인했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넷플릭스 제작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이야기다. 특히 이 드라마는 10대 아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공포영화로 다가온다. 가정 폭력이나 학대 트라우마와 같은 '클리셰'도 없다. 그저 등굣길에 마주칠 법한 평범한 아이가 밖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잠을 잤을 뿐이다. BBC방송은 "이 드라마는 부모가 자녀를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지, 그리고 자녀가 휴대전화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공포에 관한 것"이라고 묘사했다.
드라마는 이미 영국 정치권에 논쟁의 불을 지폈다. 남자와 여자 사이 젠더갈등을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키어 스티머 총리도 "나의 14살, 16살 아들과 함께 이 드라마를 봤다"며 "10대 사이의 젠더폭력은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제이미는 여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인셀'이다. 영미권 신조어인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여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연애도 못하는 무능한 남자를 뜻한다. 제이미는 이런 '인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천착했다. 그들은 "여성이 남성을 이용하려고 만들어놓은 세상과 프레임을 뒤엎어야 한다"며 영화 매트릭스 속 진실을 깨닫는 '레드필' 이론까지 만들어 여성 혐오와 폭력성을 조장한다고 드라마는 짚는다.
뉴욕타임스는 "포챈(4chan)이나 레딧(Reddit) 같은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10대들은 소위 '매노스피어(manosphere, 남성의 분노와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에 자신도 모르게 노출되고 해로운 생각에 스며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을 담배처럼 16세 미만의 어린이가 사용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호주를 비롯해 프랑스, 덴마크 등에선 일부 디지털 연령제한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소통이다. 제이미의 살인 동기를 끝까지 수사하던 형사가 학교를 나서며 무언가 깨달은 듯 서먹하던 10대 아들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장면에 힌트가 있다. 차 안에서 아들은 자신이 가고 싶던 식당의 소스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형사는 묵묵히 운전한다. 드라마는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게 어쩌면 해답의 시작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