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미국에서 판매하는 일부 의약품 가격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화이자를 시작으로 제약사들이 미국 의약품 가격을 낮추는 대신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판매가는 올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번 발표가 보여주기라는 지적도 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진행한 브리핑에서 화이자가 앞으로 미국 시장에 출시하는 모든 신약을 최혜국대우(MFN) 가격에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화이자의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31일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서한을 보내 60일 안에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가격을 인하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한 가운데 나왔다. MFN 가격은 제약사가 미국 외의 선진국에서 판매하는 가격 중 최저 가격을 뜻한다.
로이터통신, CNN, 백악관 등에 따르면 화이자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공공의료보험)에 적용되는 모든 약과 앞으로 나올 신약에 MFN을 적용한다. 또한 1차 치료제와 전문 의약품을 미국 소비자에게 최대 85%, 평균 50% 인하한 가격에 제공하기로 했다. 또 미국에서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해 700억달러(한화 약 98조원)도 투자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신 화이자가 미국에 투자하는 동안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의약품 관세를 3년 유예하기로 했다고 불라 CEO는 전했다.
백악관이 내년 초 소비자들이 약을 구매할 수 있는 트럼프RX(trumpRX) 웹사이트를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화이자도 이 사이트 판매 상품에 들어간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CNN에 트럼프RX 사이트는 직접 약을 판매하지 않고 소비자가 검색하면 해당 판매 사이트로 연결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제약사들이 앞으로 미국 내 의약품 판매가격을 낮추는 대신 미국 외 다른 국가의 판매가격은 올릴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이자 외에 다른 제약사와도 비슷한 합의를 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제약사가 화이자처럼 미국 내 판매가격을 낮출 텐데 이렇게 되면 전 세계 의약품 판매가격이 약간 오르겠지만 미국의 판매가격은 엄청나게 내릴 것이고 그래야 공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선임고문이자 이번 합의 실무를 맡은 크리스 클롬프도 이날 브리핑에서 "상무부와 USTR(미국무역대표부)이 기존 의약품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돈을 더 내도록 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 돈의 일부는 추가 연구개발 자금으로 쓰고 일부는 미국으로 다시 가져와 미국 판매가격을 더 낮추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 투입하는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 미국에서만 의약품을 비싸게 팔고 외국에서는 싸게 팔아 미국이 다른 나라의 약값을 보조해왔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이날 공개된 가격 인하 등 트럼프 정부와 화이자의 합의 세부 조건이 기밀인 데다, 미국 내 약가 산정 방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실제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인하 효과에 대해 미국 언론은 부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날 화이자의 관련 보도자료에서는 이번 가격 인하로 인한 실적 악영향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