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들이 관세를 비용이 아니라 소송가능한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
31일(현지시간) 미국 월가에서 만난 한 헤지펀드 매니저의 진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2일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걸고 꺼내든 관세정책이 뚜렷한 고용 성과는 내지 못한 채 1년만에 법정 리스크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그는 "관세가 산업을 살리기보다 변호사들만 바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미 노동부의 고용지표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현재 미국 제조업 고용은 1260만명으로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을 발표했을 당시보다 9만3000명이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일자리의 회귀"는 오간 데 없이 '채용 한파'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제조업 현장에선 "제조업이 호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TV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인디애나주 금속주조업체 BCI솔루션스의 사례를 들어 여전히 침체된 미 중부 제조업의 현실을 짚었다. 이 업체의 공장 인력은 지난 27개월 동안 240명에서 130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공장 가동률은 52% 수준에 그친다.
제조업체들이 관세 장벽의 보호를 받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원자재와 부품 비용 상승, 불확실성 증대로 투자를 포기하면서 고용 시장이 얼어붙는 '관세의 역설'에 갇혔다는 분석이다.
관세정책의 지속가능성 자체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했던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 대신 무역법 122조를 꺼내 관세정책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관세는 150일 이상 유지하려면 연방의회 승인이 필요한 임시관세다. 오는 7월24일 그 150일이 끝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이 이 정책에 동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법률을 동원해 관세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그나마 법적 근거가 탄탄했던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이 확정되면서 무역법 122조 관세 등을 두고도 소송전이 불붙기 시작됐다.
기업들이 이미 납부한 관세 환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 업계에선 이미 관세가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수입원이 아니라 '환급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전체 환급 대상액은 1750억달러(약 233조원)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관세 수입을 기반으로 한 정책 드라이브가 법적 분쟁에 휩싸일 경우 오히려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의 전형적인 통상 매파들조차 현 상황에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경제학자 출신이자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허프바우어 수석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122조라는 '응급 처치'를 선택했지만 7월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와 법적 대응에 몰두할 것"이라며 "결국 관세정책이 미국 경제 전체의 기회비용을 키우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50일 임시관세가 종료되는 오는 7월을 '관세 2차전'의 분기점으로 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연장 또는 확대를 선택할 경우 무역마찰이 다시 격화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관세 강도를 조정할 경우엔 정책 후퇴 논란과 함께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투자와 공급망 재편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외교통상가 한 인사는 "1년 전 '제조업 부흥'을 꿈꿨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법정 공방과 시간 싸움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