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3년 반 전에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봐 두렵습니다'라는 칼럼을 썼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을 취재하던 때였다.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두렵다"는 말은 당시 교류가 잦았던 삼성전자 한 임원의 얘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삼성전자 실적이 매년 사상 최대를 찍던, 백번 양보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던 때라 칼럼을 쓰고나서 오해 아닌 오해를 꽤나 받았다.
출입처를 서초동으로 옮기고나서 얼마 있다가 검찰 출신 한 법조인, 이른바 전관(前官)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년 전이었으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흐른 때였다. 그땐 TV를 틀면 채널을 돌리기가 무섭게 검사와 법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왔다.
"지금이 검사들 주가가 제일 좋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보다 더 올라갈 수 있을까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만했지만 뒷얘기가 3년 반 전 그때처럼 자못 무거웠다. 그는 검찰의 책임과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기대와 실망은 한끗 차이지 않습니까." 한발만 삐끗해도 검찰이 설 곳이 마땅찮아질 것이란 얘기였다.
새삼 삼성과 검찰에 대한 옛얘기를 꺼내든 것은 요새 부쩍 드는 기시감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나오는 삼성 반도체 위기설과 5만전자론을 보면서 그때 그 임원의 통찰을 곱씹게 된다. 삼성만이 아니다. 막바지를 향해가는 국회 국정감사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검찰의 모습 뒤로도 그날 그 전관의 심각했던 표정이 아른거린다. '어쩌면 전성기가 지났을까' 무참한 불안이 엄습하는 까닭이다.
한두달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 다큐멘터리 영화 '더 로스트 인터뷰'에서 혁신기업이 망하는 과정에 대해 한 말이 화제였다. 잡스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술기업에서는 매출을 늘리는 게 마케팅팀이 됩니다. 결국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낸 천재적 개발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죠. 그렇게 회사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좋은 제품과 나쁜 제품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운영진에 의해서요. 그게 제록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록스는 컴퓨터 산업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었어요. 컴퓨터 산업에서 거대한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도 발목이 잡혔던 거죠." (미국 제록스는 1973년 개인용 컴퓨터와 비슷한 미니컴퓨터를 개발했지만 이 제품의 잠재성을 몰랐다. 상업화되지 못한 이 미니컴퓨터는 얼마 되지 않아 제록스를 방문했던 잡스의 눈에 띄면서 지금의 애플을 만든 히트작, 애플 매킨토시 출시로 이어졌다.)
어느 조직이든 생존의 핵심 비결은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이다. 잡스가 제품 감수성이라고 말한 이 원초적 장인 정신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전성기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계단도 여기에 달렸다. 삼성도, 검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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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불량품을 모조리 태워버렸던 '애니콜 화형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야 한다"는 일갈도 흥망의 갈림길에서 삼성을 끌어올린 정신으로 남아있다.
더 흔들릴 순 없다. 시대 변화를 이끄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삼성과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검찰의 진의를 마냥 의심할 수도 없다. 이젠 다시 삼성과 검찰이 좋은 제품, 좋은 수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