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버블 우려가 계속되며 기술주들이 낙폭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AI 대장주 엔비디아가 19일 장 마감 후(현지시간) 실적을 발표한다. 한국시간으로는 20일 오전 6시 이후다.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고 약 6개월 뒤인 2023년 5월24일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는 미국 주식시장을 AI 중심으로 바꾸며 새로운 투자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엔비디아의 분기 매출액 가이던스는 시장 예상치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10월 말 기록한 사상최고치까지 6.8배 폭등했고 나스닥지수는 지난 10월 말 사상최고치까지 88% 이상 상승했다.
배런스는 엔비디아의 이번 실적 발표가 2023년 5월만큼이나 증시 판도를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5월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 이후 AI 투자에 대한 회의론이 지금처럼 높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실적은 AI 랠리를 다시 촉발시키거나 AI주를 깊은 침체로 빠지게 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인 비벡 아리아는 "엔비디아는 높은 실적 기대치를 충족시키면서 대규모 AI 자본지출을 둘러싼 회의론을 해소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엔비디아의 이번 실적 발표는 기술산업의 큰 손들이 잇달아 엔비디아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시점에서 이뤄져 더욱 관심을 끈다.
페이팔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이 이끄는 헤지펀드 틸 매크로는 올 3분기에 약 9400만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도 올 3분기에 58억3000만달러에 달하는 엔비디아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기술업계 두 거물의 지분 매각 소식은 엔비디아 주가에는 모두 부정적이다. 하지만 AI주 전반에 미치는 함의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 지분을 전량 처분한 것은 오픈AI에 투자할 225억달러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손정의는 AI의 미래를 낙관하면서 AI 산업 내에서 투자 대상을 교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틸은 AI의 미래에 좀더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뉴욕타임스(NYT)와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AI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만큼 큰 것은 아니다"라며 "AI는 대략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에 대한 헤지펀드들의 투심이 양분돼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블룸버그가 909개 헤지펀드의 올 3분기 지분 변동 공시를 분석한 결과 161개 펀드는 엔비디아 지분을 늘린 반면 160개 펀드는 줄였다.
반면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엔비디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월 말 워싱턴 D.C.에서 열린 'GPU(그래픽 처리장치) 기술 컨퍼런스'(GTC)에서 올해와 내년에 걸쳐 현재 주력 AI 칩인 블랙웰과 차세대 AI 칩인 루빈 관련 매출만 5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낙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술 강세론자인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는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AI 지출의 규모와 범위를 과소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실적은 AI 혁명에 대한 또 한 번의 주요한 확증의 순간이 되면서 연말까지 기술주에 긍정적인 촉매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캔터 피츠제랄드의 애널리스트인 C.J. 뮤즈는 올 3분기에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사업자)와 각국 정부, 인프라 공급업체의 발언들을 종합할 때 엔비디아의 이번 실적 발표에서 AI 칩에 대한 "강력한 주문 추세"가 다시 한번 확인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엔비디아가 내년 전체에 대한 "분명한 매출 전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 AI 칩 물량은 이미 매진된 것으로 보인다며 "황은 오늘날 충족되지 않고 있는 강력한 컴퓨팅 수요와 2027년 실적 가시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AI 버블 우려를 가라앉히려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뮤즈는 엔비디아의 매출액이 내년에 3500억~4000억달러, 2027년에 4500억~50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컨퍼런스 콜이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했다.
제프리즈의 블레인 커티스는 엔비디아의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 때는 어닝 서프라이즈의 규모가 시장 기대에 못 미쳐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이번 회계연도 3분기 실적에서는 "기존 실적이 시장 예상을 웃돌고 가이던스가 상향 조정되는 폭이 다시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팩트셋이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3분기(올 8~10월)에 548억달러의 매출액에 조정 주당순이익(EPS) 1.25달러를 올렸을 것으로 전망된다. 회계연도 4분기 매출액 가이던스로는 620억달러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는 "엔비디아의 이번 실적 역시 AI 컴퓨팅 수요가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할 것"이라며 "이런 흐름은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AI 버블 우려가 "향후 수년간 압도적인 컴퓨팅 수요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추세는 클라우드 사업자와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선도적인 AI 기업에서도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루리아는 엔비디아가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그 스타트업은 부채를 조달해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는 순환 거래로 AI 버블 우려가 커졌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 같은 순환 거래가 향후 막대한 규모의 컴퓨팅 수요 전망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즈호 증권의 조던 클라인은 엔비디아가 여전히 "내년 최고의 매수 추천 기술주 중의 하나"라고 보지만 "너무 상세히 분석되는" 종목이기 때문에 "실적 발표 후 매수세를 유발할 만큼 실적이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고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AI 자본지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으로 기존 신용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다고 느끼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어 엔비디아의 실적이 긍정적이라 해도 주가는 연말까지 현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봤다.
다만 클라인은 엔비디아가 하이퍼스케일러와 각국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주문과 데이터센터 주문 잔고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한다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개선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명한 기술주 투자자로 딥워터 자산운용의 애널리스트인 진 먼스터는 시장이 AI주에 다소 예민해진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어떤 실적을 내놓든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노출하며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엔비디아의 가이던스가 너무 강력하면 AI에 대한 과잉 투자 우려가 커질 수 있고 반대로 시장 예상을 웃도는 폭이 미미하면 높은 성장세가 예상보다 더 빨리 정상화되고 있다는 첫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엔비디아가 "긍정적인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한다고 해도 투자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동전 던지기처럼 반반의 확률"이라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