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승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 도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디비아 H200 칩이 대만 TSMC에서 생산되면 일단 미국으로 옮겨져 특별안보심사를 받은 뒤 중국행 선박에 선적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애꿎은 엔비디아 칩이 계속 불똥을 맞는 모양새다.
FT에 따르면 중국 규제당국은 H200 도입을 부분 허용하되 구매 승인 절차를 엄격히 관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기업이 엔비디아 칩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와 중국산 칩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유를 제출하면 규제당국이 검토, 승인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승인 이후 오히려 엔비디아 칩 수입에 제동을 걸 조짐을 보이는 것은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세우면서 미국산 칩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강력한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 정책이 시행되자 반도체 자립을 위해 화웨이, 캠브리콘 등 자국 반도체 업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화웨이가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개발한 어센드 시리즈가 이런 전략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업계에선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칩에 미국이 심은 정보유출통로(백도어)가 있을 수 있다고 중국 정부가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때 미국이 화웨이 통신장비 백도어를 의심해 화웨이 제품 구매 금지령을 내렸던 현상이 거꾸로 중국에서 미국기업 엔비디아 칩 도입에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수출 승인과 별도로 중국행 칩을 미국 현지에서 심사한 뒤 중국에 보내는 복잡한 운송 경로를 엔비디아에 강제하는 것을 두고도 국가안보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엔비디아 칩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해가 된다는 미국 내부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얘기다.
미 상원에는 향후 30개월 동안 중국으로 첨단칩을 수출하는 것을 상무부 장관이 허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초당적으로 발의된 상태다.
WSJ는 다만 수출용 칩에 대한 안보 검토 자체가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칩 자체보다는 칩이 어느 용도로 쓰이느냐가 안보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H200 칩 수출을 허용한 것은 화웨이가 비슷한 성능을 갖춘 AI 시스템을 이미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화웨이의 최신 어센드 칩을 기반으로 한 AI 플랫폼 '클라우드매트릭스384'가 엔비디아의 최신 아키텍처 블랙웰을 기반으로 한 'NVL72'와 유사한 성능을 갖췄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가 확인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다만 미 상무부와 엔비디아는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