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와중에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을 요청 받은 국가 중 일본이 처음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하는 자리로 주목 받았다. 일본은 이에 원론적으로 답하는 한편 우리 돈 108조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하며 미일 관계 강화를 노렸다.
20일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1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의 대미투자를 포함한 양국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730억달러(한화 약 108조5948억원) 규모의 2차 대미투자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천연가스 발전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투자 규모는 1차 프로젝트 360억달러(약 53조5968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해 7월 무역협상을 통해 미국이 일본 제품의 관세를 기존 계획보다 10%포인트 낮은 15%로 정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에 5500억달러(약 818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1차 투자계획은 AI 데이터센터용 전력을 위한 가스발전소 건립, 미국의 해상원유수출기지 건설 등에 일본이 참여하는 내용으로 공개됐다. 1, 2차 모두 미국이 원하는 에너지 프로젝트에 일본이 돈을 대는 셈이다.
이날 또다른 화두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중동 정세 안정을 위한 일본의 협력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파병 요구를 여러 나라가 사실상 거절하거나 난색을 보이자 "나토 동맹국에 매우 실망했고 다른 두어 국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두어 국가는 한국과 일본 등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됐다. 우리 또한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 촉각을 세운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내놓기보다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쟁 관련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며 "우리는 일본과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에 4만500명의 (주일미군) 병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등 누구에게든 무엇을 많이 원하는 건 아니지만 각국이 나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이 원유 90% 이상을 중동에 의지하는 점을 언급했다. 일본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타격을 입고 있으니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그는 다만 "일본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해 나토에 대한 불만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위대 파병이 쉽지 않다는 기조 아래 원론적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친근하게 '도널드'라고 부르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도널드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회담 모두발언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일련의 행동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받았는지' 묻는 말에 즉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 법률 안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상세하고 확실하게 설명했다"고 답했다. 앞서 일본은 평화헌법상 파병이 쉽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상태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의 이 같은 답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해 군함 파견 대신 다른 기여는 할 수 있단 뜻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일본은 같은 날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공동 성명을 내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면서 안전한 통행을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들 국가는 "해협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호르무즈 파병 관련, 일본과 같은 상황에 놓인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 확대 주문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처럼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을 들은 만큼 관련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