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사진)을 차기 이란 지도자로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리바프 의장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실권을 행사하는 실력자 중 하나로 평가된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 갈리바프를 차기 이란 지도자로 내세우는 방안이 유력하게 고려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갈리바프 의장에 대해 "가장 유력한 (차기 이란 지도자) 후보 중 한 명"이라면서도 "검증이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서두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이란 전쟁 출구 전략의 핵심은 베네수엘라의 델시 로드리게스 같은 인물을 차기 지도자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한 뒤 로드리게스 당시 부통령에게 권력을 맡겼다. 전문가들은 로드리게스가 미국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정권 안위를 보장받았다고 본다. 이란에서 이 같은 거래가 이뤄진다면 미국은 이란의 원유 산업을 대가로 요구할 것이라고 소식통은 내다봤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사망 이후 알리 라리자니 최고 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이 가장 강력한 실권자로 대두됐으나 지난주 공습으로 사망했다. 그 다음 주목받는 인물이 갈리바프 의장이다.
이란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출신인 갈리바프 의장은 테헤란 시장을 거쳐 2020년부터 의회 의장 직을 수행 중이다. 2005년, 2013년, 2017년, 2024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 네 번이나 출사표를 던졌던 것을 감안하면 출세욕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테헤란 시장직 수행 기간 IRGC 인맥을 이용해 부패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도 있다.
라즈 짐트 국가안보연구소(INSS) 선임연구원은 "갈리바프 의장은 매우 부패한 인물"이라며 "오히려 부패했기에 가장 거래하기 쉬울 수도 있다"고 했다.
갈리바프 의장을 차기 지도자로 세우려는 것은 미국의 오판이라는 지적도 있다. 행방이 묘연하긴 하나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생존한 상태에서 미국이 갈리바프 의장을 차기 지도자로 추대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갈리바프 의장이 성직자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이란 헌법은 최고 수준의 종교 지식을 갖춘 인물만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규정하며 여론 다수가 신정 체제를 추종한다. 자칫하면 IRGC와 여론 모두가 갈리바프 의장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갈리바프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통제를 따를지 장담할 수 없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란 보수파 성직자들 못지 않게 강경한 반서방주의자로 알려졌다. 예루살렘포스트는 그에 대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보다 다루기 쉬운 인물일지 몰라도 누구보다도 완강하게 IRGC의 지역 패권을 수호하려는 인물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정책에 밝은 한 익명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처럼 행동한다"며 갈리바프 의장을 통한 이란 전쟁 출구전략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갈리바프 의장을 거론해 이란 지도부를 혼란에 빠트리려 한다고 본다. "이란과 협상 중"이라면서도 대화 상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 때문에 이란 지도부에 내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란 지도부는 거의 마비됐으며 도청, 암살 우려 때문에 통신도 제한적"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과 소통하며 출구전략을 찾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를 두고 불안감이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체제 내에서 배신자 찾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갈리바프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상대로 거론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갈리바프 의장이 '가짜 뉴스'라고 부정했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정은 새로운 의문을 만들어낼 뿐"이라며 "이미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