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준 회의실 '두개의 태양'…불편한 동거 600일 예고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5.10 17:59

[물러나는 파월 그후 연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7년 11월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으로 제롬 파월 연준 이사(오른쪽)를 지명한 후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전 세계 금융시장의 시선이 오는 15일 다시 한번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 모인다. 지난 8년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키를 쥐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날 의장 임기를 마친다. 시장의 시선은 새로 취임하는 케빈 워시 의장보다 여전히 파월 의장에게 쏠리는 분위기다. 파월 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2028년 1월31일까지 남은 연준 이사 임기를 채우겠다고 예고한 탓이다.

연준 의장이 의장 임기를 마치고도 연준 이사로 자리를 지키는 것은 1948년 2월 매리너 에클스 전 의장 이후 78년만에 처음이다. 당시 연준 구조나 연준을 둘러싼 여건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던 점을 감안하면 파월 의장의 연준 잔류 결정은 사상 초유다. 사실상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군림하는 연준에 '두개의 태양'이 뜨는 셈이다.

연준 회의실의 '두개의 태양'은 정책 갈등을 넘어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 2기를 통틀어 노골적인 금리 인하 요구에 맞서온 파월 의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복심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워시 의장 지명자가 통화정책 방향과 시점, 인플레이션 대응 방식 등 주요 쟁점에서 맞부딪힐 여지가 적잖다.

연준 내부의 이견이 확대되는 흐름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올해 새로 투표권이 부여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지난달 회의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문구가 연준 성명에 포함되는 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정책 기조를 둘러싼 내부 긴장감이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자가 지난 4월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AP=뉴시스

파월 의장이 지난 4월29일 기자회견에서 '그림자 의장'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시장은 앞으로 연준의 메시지가 일관성을 잃을 가능성도 우려한다. 중앙은행 내부 발언과 신호가 엇갈릴 경우 금리 경로 예측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자산 가격 전반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국채금리와 달러 변동성 확대, 신용시장 스프레드 확대 등 전형적인 정책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의 연준 잔류가 오히려 연준의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파월 의장과 차기 의장 체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도가 내부 분열을 키우면서 연준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순간 정치권의 압박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불편한 동거'가 연준이 독립적인 통화정책 기구로서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월가 한 인사는 "연준의 권력 교체는 끝났지만 연준 내부 권력 충돌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워시 의장이 이끌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금리를 내리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재정적자, 대규모 국채 발행, 관세 정책에 따른 비용 상승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워시 의장조차 금리 인하를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금리 인하를 추진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대로 금리를 '제로금리 시대'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물가 재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금리 인하 기대를 발목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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