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파월 그후 연준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15일(현지시간) 의장 임기를 마무리한다. '비(非)경제학자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연준 수장에 올랐던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쟁,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등 임기 내내 위기를 견딘 인물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대응하며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려 한 상징적 인물로 남게 됐다.

파월은 여러 측면에서 이례적인 연준 의장으로 평가받는다. 1953년 2월 워싱턴DC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연준 의장과 달리 로스쿨에서 박사를 하고 변호사를 지낸 '비경제학자' 출신이다. 미 공영 PBS방송에 따르면 파월은 1981년 이후 경제학 석사 학위가 없는 첫 연준 의장이었다.
1987년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부터 벤 버냉키, 재닛 옐런(2018년 퇴임)까지 30여년 연준 의장은 '경제학 박사'였고 이들과 다른 파월의 임명은 단연 화제였다. 미 경제매체 포천은 당시 "파월은 수십 년 만에 처음 등장한 비경제학자 연준 의장"이라며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배경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투자은행 딜런리드앤드컴퍼니에서 금융 실무를 익혔고, '아버지 부시'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정권 교체로 재무부에서 나온 그는 월가로 복귀해 칼라일그룹 파트너로 활동하는 등 금융시장 경험을 쌓았다.
연준과의 인연은 2012년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파월의 실무 능력과 협상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연준 이사의 정식 임기는 2014년 2월 시작됐다. 파월은 트럼프 1기 때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2018년 2월부터 의장직을 수행한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하며 정당이 다른 두 대통령에게 모두 선택받은 드문 기록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을 임명할 당시 그를 "강하고 현명하며 합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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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과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정책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1기 집권기 파월이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공개적으로 파월 임명을 "최악의 선택 중 하나"라고 후회하며 그의 해임 가능성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월 압박은 2기 행정부 출범 후 한층 심화했고,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미 법무부는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문제와 관련 의회 증언을 빌미로 파월을 형사 기소했다. 파월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서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지키는 '방패'와 같은 존재감이 생겼다.
미 법원은 지난 3월 "법무부가 파월을 압박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복하게 하거나 물러나게 하려는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충분하다"며 법무부가 파월에게 보낸 소환장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법무부는 지난달 파월에 대한 수사를 전격 중단했다. 파월은 지난달 29일 의장으로선 마지막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주재한 뒤 기자회견에서 "연준 독립성의 핵심은 정치적 고려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에겐 "다음엔 여러분을 (여기서) 못 볼 것"이라며 뒤돌아섰다.
연준 의장과 이사 임기는 별개다. 관행상 의장과 이사에서 동시에 물러날 수 있지만 파월은 의장 퇴임 후에도 2028년 1월까지 남은 이사 임기를 채울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파월은 트럼프 시대의 압박 속에서 연준 독립성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파월의 임기 8년은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였다. 임기 3년 차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자 파월은 주저 없이 금리를 0%로 낮추는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QE)'를 단행했다. 당시 외신은 그를 "금융 붕괴를 막아낸 구원자"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빛 뒤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파월은 팬데믹 종료 이후 나타난 2021년 물가 상승 조짐에 대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오판을 내리며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 이 오판으로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결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는 등 전 세계 경제에 고금리 충격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파월 자신도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퇴역시킬 때가 됐다"며 실수를 사실상 인정했다.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5.25%포인트 인상하는 고강도 긴축에 나섰다. 미국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시티저널은 "파월은 인플레이션의 부활을 초래한 연준 의장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