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다시 '안정'이라는 이름의 경제적 대치 상태로 돌아갔다."
'세기의 회담'으로 관심을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이 16일(미 동부 현지시간) 내놓은 평가다. 지난해 관세전쟁과 휴전 이후 양국 정상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댄 첫 회담을 두고 갈등 해소의 기대가 컸지만 이틀 동안의 회담 결과는 미중 관계가 다시 한번 '관리된 경쟁'과 '예측가능한 대치' 국면으로 돌아갔음을 확인한 수준에 그쳤다는 진단이다.
회담 이후 양국의 발표가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이런 평가에 더 힘이 실린다. 중국의 보잉 항공기 구매,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 양국간 무역위원회·투자위원회 설치 등이 거론된 가운데 구체적인 규모와 이행 방식을 두고 양국의 발표에 온도차가 상당하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길 전용기에서 중국이 보잉 항공기 200대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대대적으로 과시한 데 대해 중국 상무부는 구체적인 규모를 언급하지 않은 채 '일정한 합의'에 도달했다고만 발표했다. 시장에선 보잉 항공기 구매 발표 자체가 구속력 없는 초기 단계의 의사 표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양국의 발표도 크게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동의하면서 통행료 부과 시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힌 지 이틀만인 이날 푸충 주유엔 중국대사가 미국이 추진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규탄 결의안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사실상 퇴짜를 놨다.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이란 전쟁을 두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라고 밝혔다.
관세 문제를 두고선 중국이 동등한 규모의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인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힌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신설하기로 한 무역위원회의 운영방식 등 세부사안에 대한 협의도 추후 협상으로 미루면서 추가 진통을 예고한 상황이다. 화려한 의전과 두 정상의 친밀한 장면이 부각됐지만 핵심 현안에서 구체적 합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번 회담에서 휘발성이 가장 높은 현안으로 꼽혔던 대만 문제 역시 불확실성만 증폭된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문제를 시 주석과 상세히 논의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향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승인 여부가 이번 회담의 성격을 가를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사설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이 중단되면 인근 지역 동맹국들에 미국의 나약함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휘둘렀던 대(對)중국 관세 압박 카드의 한계가 이번 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이 그동안 문제 삼아온 중국의 산업 과잉생산 문제, 불공정 보조금 정책, 시장 개방 확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확장 등 핵심 의제가 이번 회담에서 사실상 실종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에 매달리는 사이 중국은 미국과 정면 충돌을 피해 시간을 벌면서 내부적으로 경기 둔화에 대처하고 기술 자립을 꾀할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안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스콧 케네디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1년 전 145% 관세로 중국에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했던 상황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것은 이미 중국의 판정승"이라고 밝혔다.
미중 관계의 향후 분수령은 5개월 뒤 만료되는 무역 휴전의 연장 여부가 될 전망이다. 외교통상가 한 인사는 "양국이 다시 관세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휴전이 연장되더라도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희귀 광물, 공급망 재편,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까지 경쟁의 전선이 더 선명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