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AI(인공지능) 칩 회사인 브로드컴의 실적이 4일(현지시간) 반도체주 랠리에 제동을 걸었다.
브로드컴은 전날(3일) 장 마감 후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고도 연간 매출액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날 주가가 12.6% 급락했다.
이 여파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7.7% 추락하고 암 홀딩스는 4.5% 하락했다. AMD는 3.6%, 퀄컴은 2.6% 떨어졌다. 인텔은 0.8% 내려갔다. 반면 마블 테크놀로지는 4.9%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갔고 엔비디아와 TSMC도 1.9%씩 올랐다. 이날 30개 반도체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2.2%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이날 반도체주의 하락이 역사적인 랠리 이후에 나타난 단순한 숨 고르기에 그칠지, 아니면 반도체주 낙관론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CNBC는 이날 반도체주 약세는 하락 추세로의 전환이라기보다 단기 조정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우선 AI 반도체주 랠리의 핵심 동력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자본지출인데 이날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이날 알파벳 클래스A는 3.7% 뛰어올랐고 아마존은 1.5% 상승했다. 메타 플랫폼스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각각 0.7%와 0.2% 강세를 보였다. 오라클은 2.6% 올랐다. 그간 다른 반도체주에 비해 덜 올랐던 엔비디아가 1.9% 상승한 것도 눈길을 끈다.
브로드컴의 실적이 AI 투자 둔화를 시사했다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주가도 크게 흔들렸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주가가 많이 하락한 종목들의 공통점은 최근 주가 상승세가 가팔랐다는 것이다. CNBC에 따르면 S&P500지수 내 기술주 중에서 장기 추세선인 200일 이동평균선을 가장 큰 폭으로 웃돌고 있던 종목들이 이날 급락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AI 수혜기업들의 실적을 문제 삼았다기보다 그간 많이 오른 종목에서 차익 실현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지난 1일 실적 발표 후 주가가 급등했던 서버회사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가 2.6% 하락한 것도 과열 국면에 있던 종목들이 한꺼번에 쉬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또 다른 서버회사인 델 테크놀로지스는 최근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데 따라 장 초반에는 차익 실현으로 하락했지만 결국 0.2% 강세로 마감했다
BTIG의 애널리스트인 조너던 크린스키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으로 S&P500 정보기술(IT) 업종은 200일 이동평균선 대비 28% 위에 있으면서 상대강도지수(RSI)는 82를 나타냈다. RSI가 70을 넘으면 단기 과열 신호로 해석된다. 그는 "이런 경우는 1990년 이후 단 10번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S&P500 IT업종의 주가가 지난 10주간 44.6% 급등했는데 이는 "(닷컴 버블 이후) 25년간 보지 못했던 극단적인 수준의 과열"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브로드컴의 실적에 매도로 반응했지만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투자자들이 브로드컴의 실적에 실망한 이유는 AI 매출 가이던스를 상향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브로드컴은 2027 회계연도의 AI 매출 전망을 기존과 같은 1000억달러 이상으로 유지했다.
이에 대해 모간스탠리의 애널리스트인 조셉 무어는 "1000억달러 이상이라는 기존 매출 가이던스에서 의미있는 수준의 상향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애초에 높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인 스테이시 라스곤은 브로드컴의 주가가 향후 한두 분기 동안 쉬어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매출액과 주당순이익(EPS)이 연간 50% 이상 성장하고 있고 사업 환경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며 "이 스토리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기까지 한두 분기를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브로드컴이 구글에 공급하는 TPU(텐서 프로세싱 유닛) AI 칩의 일부를 대만의 미디어텍이 가져가고 있다는 점은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요소라는 지적도 있다.
맥쿼리의 애널리스트인 아더 라이는 구글이 공급받는 TPU 중 브로드컴의 비중이 올해 95%에서 2027년 80%, 2028년에는 65%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인 제임스 슈나이더는 구글의 TPU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공급업체 다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