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페인을 상대로 '무역중단'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들과 대립했지만 75조원 규모의 신규조달 등 국방비 증액기조를 확인하며 정상회의를 화해기조로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이 나토의 방위비 증액을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협상의 무기로 삼는 '트럼프식 거래외교'가 동맹국을 상대로 한층 노골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한국 역시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통상문제와 연계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던 길에 스페인이 방위비분담금 증액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스페인과 무역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그들(스페인)은 (미국의) 막대한 지급요청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언급한 '지급'이 구체적으로 어떤 비용을 의미하는지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스페인이 이란을 상대로 한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지원하지 않고 나토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페인을 정조준한 배경엔 우선 나토의 새로운 방위비 목표가 있다. 나토는 회원국들의 국방 관련 지출을 GDP(국내총생산)의 5%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스페인은 현재 GDP 대비 2% 수준에서 2.1% 이상은 올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한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방위비 지출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면서 "스페인은 지난 2년간 나토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국방비를 늘린 국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날 나토 정상회의 이후 회원국 정상들은 공동선언문에서 회원국이 공격받을 경우 모든 동맹국이 함께 방어에 나선다는 워싱턴조약 제5조의 집단방위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한 "오늘 앙카라에서 우리는 500억달러(약 75조원) 이상의 신규 공공조달을 발표하며 공동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산업과 협력해 혁신을 가속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히며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늘리겠다는 기존 공약을 이행 중이라고 했다.
당초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대립구도가 형성됐지만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비공개 회의 참석자 4명의 말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에서 그린란드, 스페인에 대한 논란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 참석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여러분과 계속 함께하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한 셈이다.
하지만 주요 외신들은 스페인에 대한 압박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동맹국과의 무역관계까지 안보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경제와 안보를 하나의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트럼프식 거래외교'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안보동맹국도 방위비와 통상문제가 결합한 협상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