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를 싣고 아시아로 향하던 유조선 2척이 홍해에서 친이란 세력인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 위협에 항로를 되돌렸다. 중동의 양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흔들리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사우디 원유를 실은 유조선 2척이 홍해 남단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향하던 중 항로를 변경해 북쪽 수에즈 운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이들 선박은 사우디 홍해 연안 항구인 얀부에서 원유를 선적한 뒤 중국과 인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후티 반군이 사우디 항구에서 원유를 싣거나 내리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운항 계획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현지 언론은 "해상 봉쇄 시작 이후 6척의 선박이 항로를 바꿔 되돌아갔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의 해상 봉쇄는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번 전쟁에서 새로운 전선이 열릴 가능성을 시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할 경우 "우리가 처리할 것"이라면서 대응을 경고했다.
후티 반군은 예멘 북부와 홍해 연안을 장악하고 있어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 중 하나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해협은 홍해 남단에 있는 폭 약 30㎞의 길목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핵심 해상 교역로다. 에너지 컨설팅회사 리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하루 약 250만배럴의 원유가 이 해협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운송된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홍해를 우회 수출로로 이용해왔다.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봉쇄될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에 추가 차질이 불가피하다. 영국 해상 위험관리 업체 뱅가드는 "이번 움직임은 후티 반군의 사우디 해상 봉쇄 이후 상업용 유조선 운항 경로가 바뀐 첫 사례"라며 "사우디 원유 수출과 역내 해운 패턴에 추가적인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격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물류 운송 역시 다시 위축된 상황이다. 에너지 컨설팅회사 케이플러에 따르면 20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화물선은 4척에 불과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유조선 피격 사례도 보고됐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는 21일 유조선 1척이 발사체 공격을 받아 선원들이 구명보트로 대피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유조선 2척이 호르무즈 해협 남쪽 항로를 통과하려던 중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선박에 남쪽 항로 이용을 장려하지만 이란은 자국 연안과 가까운 북쪽 항로 이용을 요구해왔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호르무즈 해협과 역내 에너지 인프라를 둘러싼 무력 충돌 격화는 에너지 공급 차질 우려를 키우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핵심 항로로 부상한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위협받으면서 시장의 우려는 한층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유 공급 차질 우려로 국제유가는 연일 오름세다. 브렌트유 선물은 21일에도 2% 이상 상승해 배럴당 91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4달러를 다시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