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초크포인트]③ 수에즈운하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두고 미국과 날 선 대치를 이어가면서 또다른 '초크포인트'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에 위치한 수에즈 운하다.
아라비아반도 동쪽의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반도 서쪽의 수에즈운하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영국이 약 70년 전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잃으며 초강대국의 지위를 내려놓았던 역사도 소환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내리막을 걷던 영국이 수에즈 운하에서 결정적 후퇴를 경험했듯 이번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1869년 완공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길이 약 193㎞의 인공 수로다. 전세계 해상 교역량의 약 12%를 담당한다. 아시아(홍해)와 유럽(지중해)간 가장 짧은 항로의 핵심부다. 홍해 남단의 바브엘반데브 해협과 더불어 홍해를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위치다.
이 운하의 등장으로 아시아~유럽 항로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우회할 때보다 최대 9000㎞ 단축됐고, 항해 시간은 15일 가량 줄었다. 인공운하로서 통행료도 받는다. 1만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기준 50만~70만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하루 50척 넘는 선박이 이곳을 찾는다.
수에즈 운하가 막혔을 때의 혼란은 2021년 3월 에버기븐호 좌초 사태 당시 세계가 목격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수로를 완전히 가로막으면서 선박 수백척의 발이 묶였고 유럽과 아시아 공급망 전체에 지연이 발생했다. 영국 로이드리스트는 당시 물류 차단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 손실액을 시간당 약 4억달러(약 6100억원)로 추산했다. 단 엿새 간 마비였지만 에너지 수급 불안과 글로벌 물가 상승 공포는 '초크포인트'의 위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역사적으로 이 운하는 해상 무역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국·프랑스가 세계적 강대국 지위를 사실상 이곳에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당초 수에즈 운하 운영권은 영국과 프랑스가 쥐고 있었다.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에 반발해 이집트에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복병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사전 통보도 없이 전쟁을 개시한 데 격분해 파운드화 가치를 흔들면서 영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결국 영국은 굴욕적으로 철수를 선택해야 했다. '수에즈 모멘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영국과 유럽 열강이 더는 세계 질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라가 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국제질서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군사적,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이 해협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잃는다면 70년 전 영국이 경험한 것과 같은 지정학적 대전환을 부를 수 있다. 바닷길의 주도권이 패권의 물줄기를 바꾸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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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른바 '호르무즈 모멘트'가 미국 패권의 향방을 결정짓고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