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안보정책 전반을 적극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오랫동안 금기시해 온 핵무기 반입 문제를 공론화하는 한편, 방위력 강화와 국가정보체계 개편까지 동시에 추진 중이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핵억지와 방위력, 정보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안보정책의 방향과 전략을 살펴봤다.
지난 19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인터넷 방송 '겐론 테레비'에 출연해 "일본으로서는 논의하기 어려운 과제이지만, 더 이상 언급을 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가 핵"이라며 "위기감을 갖고 모든 정책을 금기 없이 논의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의 핵안보 정책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비핵 3원칙'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핵 3원칙은 19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국회에서 제시한 것으로,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제조하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법률로 제정되진 않았지만 일본 국회는 1976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 당시 정부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 기본 정책으로 확립된 비핵 3원칙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후 비핵 3원칙은 일본 핵안보 정책의 근간이 됐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피폭을 경험한 일본의 국시(國是)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비핵 3원칙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미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비핵 3원칙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통해 억지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일 국회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서는 3대 안보문서 개정과 관련해 "(핵을 포함한) 모든 과제를 확실히 논의의 장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일본유신회도 최근 정부에 제출한 '정책 제언'에서 비핵 3원칙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등 정치권 논의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비핵 3원칙 재검토론이 확산하는 배경에는 일본을 둘러싼 핵안보 환경이 급변했다는 인식이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약 10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전망되고, 북한도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에 일본 내에서는 미국 본토에 배치된 핵무기에 의존하는 기존 억지 체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커진 것이다.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사시 핵무기를 탑재한 미군 함정이나 잠수함의 일본 기항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핵무기 반입 금지'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2030년대 초 실전 배치를 목표로 개발 중인 해상발사형 핵순항미사일(SLCM-N)이 거론된다. 이는 기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보다 제한적이지만 정밀 타격이 가능한 전술핵무기로 일본 해역에서 중국과 북한을 사정권으로 한 작전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국가기본문제연구소는 지난 4월 정책 제언에서 "미국이 2032년까지 SLCM-N을 탑재한 핵잠수함을 배치할 경우, 그전에 일본이 비핵 3원칙, 특히 '반입 금지' 원칙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비핵 3원칙 개정은 미국 핵전력의 일본 내 반입을 가능케 함으로써 핵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비핵 3원칙 재검토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일본 사회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경험으로 반핵 정서가 강하다. 지난 4월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비핵 3원칙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비핵 3원칙의 수정이 장기적으로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갈등도 커질 수 있다.
비핵 3원칙 논의와 함께 일본 정부는 '안보 3문서'의 조기 개정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안보 3문서는 △국가안전보장전략(NSS) △국가방위전략(NDS) △방위력정비계획(DBP)으로 구성되는 일본 안보정책의 최상위 지침이다. 무엇을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군사력을 운용하며, 향후 방위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제시하는 일종의 '안보 청사진'이다.
지난 2022년 기시다 정부는 안보 3문서를 개정해 전후 안보정책 방향을 크게 전환시켰다. 당시 적 미사일 발사기지 등을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한 것은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이는 상대방의 공격 시에만 최소한 방위력을 행사하는 '전수방위' 원칙 대신 위협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제거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된다.
다카이치 정부는 지정학적 위기 속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4년 만에 안보 3문서 조기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방위비 확대다. 기시다 정부는 안보 3문서를 통해 2027년까지 방위 관련 지출을 2022년 명목 GDP의 2% 수준까지 증액하기로 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방위비 예산에 추가경정예산까지 더해 이 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겨 달성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안보 3문서를 다시 개정해 방위비를 추가로 인상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목표치와 달성 시점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GDP 대비 3.5%의 방위비 기준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만약 일본이 GDP대비 3.5% 수준으로 증액할 경우 2022년 GDP 기준으로 약 19조 6000억 엔, 지난해 기준으로 약 23조 4000억 엔에 달하며, 이는 현 방위비 지출 규모( 11조 엔)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안보 3문서의 개정은 재래식 전력 증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6월 정부에 제출한 자민당의 제언은 일본이 직면한 안보 환경을 '새로운 전쟁'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전쟁 방법'과 '지속전 능력의 확보'와 같은 구조적 전환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군사력뿐만 아니라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분쟁, 사이버 공격, 우주 영역에서의 경쟁, 경제안보를 둘러싼 강압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안보 위협이 상시화 됐기 때문이다. 방위비 증액도 단순히 예산 규모를 확대하기보다 실제 전투에서의 지속능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 탄약 비축 확대, 방위산업 생산 라인 강화, 장비 수명 관리, 안정적 보급망 구축 등이 핵심 항목으로 제시됐다.
무기 수출 확대와 방위산업 육성도 핵심 의제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개정해 완성품 무기 수출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살상 능력을 갖춘 방위장비의 수출도 가능해졌고, 필요에 따라 분쟁국에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나아가 자민당은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해 방위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공급망 강화와 제조공정 효율화, 사이버보안 및 핵심기술 보호, 정부의 제조시설 인수와 민간 위탁 운영 등을 통해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무기 수출과 연구개발 투자, 민군기술 협력을 활성화해 방산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김영근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는 "안보 3문서 개정은 전문가회의의 가을 제언을 거쳐 연내 개정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 유신회는 중장기적으로 3% 이상의 방위비 인상을 제안했다"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개헌보다 현행 헌법 해석 아래 전수방위의 운용 범위를 넓히는 '보통국가화'의 제도화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핵억지력 및 방위력 강화와 함께 추진되는 또 다른 안보정책은 국가 정보역량 강화다. 그동안 일본은 내각정보조사실, 공안조사청, 경찰청, 방위성 정보본부 등이 각각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기관 간 정보 공유가 어렵고 기능들이 분산돼 있어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정보 판단과 전략 수립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국회는 지난 5월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정보회의'를 설치하고, 내각정보조사실을 국가정보국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국가정보회의는 총리를 의장으로 관계 각료들이 참여해 안보·테러 및 외국 세력의 정보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방침을 수립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정보 실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국은 약 700명 규모로 구성돼 각 기관이 수집한 기밀정보를 취합·분석하고 관리하는 거점 역할을 맡는다.
특히 국가정보국은 단순한 정보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 시도와 영향력 공작,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이 복합적으로 확대되면서 경제안보와 전략기술 보호, 허위정보 및 인지전 대응도 주요 임무에 포함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외국 세력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 정비와 방첩 관련 법률 제정도 동시에 추진한다.
정보체계 개편은 일본의 군사전략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일본이 추진하는 반격 능력과 통합 방공·미사일 방어체계가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상대국의 미사일 발사 징후와 이동식 발사대, 지휘통제시설의 움직임을 조기에 탐지하고, 관련 정보를 군과 정부가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핵위협 대응과 확장억제 정책에서도 상대국의 의도와 핵전력 운용 동향 등을 정확히 분석하는 능력이 전략적 판단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기태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일본 안보정책의 향방은 '정치적 수용 가능성'과 '전략적 필요성'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일본 내부 방위정책의 조정이 이나라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질서 전반에 직접적인 파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한국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