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태계 'AI 서열'… '지배자' 버티고 '공급자'는 휘청

정혜인 기자, 백소희 기자
2026.07.31 04:03

'AI거품론' 韓日 직격탄

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주요 지수가 표시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6월 이후 글로벌 주요 반도체주가 일제히 흔들렸지만 충격의 크기는 달랐다. 그간 빅테크(대형 IT기업)들은 AI(인공지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데이터센터 설립과 AI모델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관련기업 주가가 타격을 받았다.

30일 외신과 전문가의 말을 종합하면 같은 반도체 생태계라도 각 기업이 차지한 위상에 따라 주가 변동성에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글로벌 7개 반도체기업 중 엔비디아는 AI 연산의 핵심인 GPU(그래픽처리장치) 경쟁력을, TSMC는 첨단공정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력을 각각 확보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차지했다. 이 생태계의 '지배자' 격인 엔비디아는 AI 개발의 필수 인프라인 '쿠다'(CUDA) 소프트웨어를 보유했다. 이는 엔비디아만의 기술력 '해자'로 작용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어렵게 한다.

TSMC는 대체 불가한 제조사로 위상이 공고하다. 엔비디아, 애플, AMD 등 모든 칩설계기업이 줄을 서서 생산을 맡긴다. 경기변동이 발생해도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한다.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속도가 둔화해도 이들 업체는 단기간에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장벽과 시장 지배력으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키옥시아,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샌디스크 등 메모리 위주 공급사도 AI 투자붐에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처럼 생태계를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리 고성능 HBM(고대역폭메모리)이라도 결국 엔비디아 GPU에 탑재돼야 가치를 극대화한다. 산업생태계의 상단, 즉 전방에 위치한 엔비디아나 TSMC에 비해 각종 시장상황에 흔들리기 쉬운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PER(주가순수익비율)가 한 자릿수에 그쳤다며 투자자들이 이미 1~2년 안에 메모리칩이 신규 공급돼 가격과 수익이 하락할 것을 전망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간 주가하락률 차이도 주목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 모멘텀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이 강점은 AI 과잉투자 우려와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지자 도리어 약점이 됐다. SK하이닉스의 매출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고점 자체가 낮아 상대적으로 주가가 덜 빠진 측면도 있다.

한국과 일본 증시 고유의 수급구조가 충격을 확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 증시는 미국보다 개인투자자의 직접투자 비중이 높고 상승장에서 레버리지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특징을 보였다.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시장분석팀은 "한국 시장의 단일종목2배레버리지ETF(상장지수펀드) 및 신용거래 물량이 가파른 주가하락시 강제 청산되는 '악순환 사슬'을 형성했다"며 "메모리기업 주가가 기업의 실제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폭락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극한의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투기를 섞어놓은 실험장"이라고 비유했다.

트레이딩 플랫폼 이토로의 조시 길버트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담당 수석애널리스트는 "코스피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비중이 큰 만큼 두 회사가 함께 무너질 경우 숨을 곳이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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