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인공지능(AI) 투자 쏠림에 대한 경계감이 짙어진 가운데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청산을 진행한 걸로 나타났다. AI 관련주 중점 투자로 급성장한 신생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는 급격히 불어나는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포트폴리오를 또다른 헤지펀드 시타델에 매각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모든 헤지펀드들이 SA와 같은 상황은 아닌 걸로 분석된다. 단 AI와 반도체 관련주에 비슷한 방식으로 집중투자한 펀드라면 연쇄적 자산 매각에 나설 수도 있다.
1일(현지시간)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지난달 말 28일까지의 3거래일 동안 헤지펀드들의 '디그로싱'이 2022년 11월 이후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디그로싱은 매수·매도 포지션을 모두 줄여 위험을 낮추는 것이다.
컴퓨터 알고리즘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 펀드'의 경우 모멘텀 투자비중이 과거 5년 평균보다 훨씬 낮게 떨어졌다. 모멘텀 투자는 상승주 위주로 매수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최근 모멘텀 투자는 AI 종목에 집중됐다. 그 비중이 떨어진 건 그만큼 AI 투자를 중심으로 주식 청산을 진행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근 뉴욕증시에서 AI 및 반도체주는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주요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은 지난달 27~31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약 8% 하락했다. 한 달 기준으론 15% 하락했다.
단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하락을 시장 조정보단 순환매(로테이션)로 본다. 투자자들이 AI 기술에 쏟아부은 막대한 자금의 수익화 여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AI 주식은 이미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회의에서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의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한 것도 한 요인이다. 회사채를 발행해 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해야 하는 AI 기업들에게 국채금리가 부담이 될 거란 우려가 나왔다.
이 때문에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투자가 옮겨가고 있단 설명이다.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와이 리 애널리스트는 "최근의 모멘텀 약세는 폭락이나 조정이라기보다는 로테이션에 가까워 보인다"며 "이제 시장은 투자수익률(ROI)과 현금흐름 등이 더 나은 기업들에게 보상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루이스 그랜트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모멘텀 종목들의 급격한 조정, 많은 AI 수혜주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부담이 줄어든 점을 감안할 때 가장 악화된 상황은 지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주 AI 관련 종목 변동성의 한 배경으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포트폴리오 청산이 지목됐다. 이는 전 오픈AI 연구원인 레오폴드 아센브레너가 2024년 설립한 신생 헤지펀드로 경제 전반에 걸친 AI 발전의 수혜주를 골라내는 펀드로 유명했다.
하지만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킨 AI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이 일어났다. 해당 펀드는 하락장에서 공모 주식을 강제로 매도해야 했다. 이러한 악순환은 30일(현지시간) 켄 그리핀이 이끄는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이 SA의 남아있는 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한꺼번에 매수하면서 종결됐다. 시타델은 해당 주식을 시가 대비 1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인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관계자를 인용, 보도했다.
이로써 SA의 대량 매도 리스크가 줄자 당일 뉴욕증시에서 반도체주가 급등했다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SA는 모든 자산을 청산한 것은 아니며 스타트업 위주로 축소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