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57개" 보유국 인정?..."김정은 만난다"는 트럼프, 대북정책 달라지나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8.20 10: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해 악수를 하고 있다. /머니투데이포토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연내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며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만날 가능성을 보도한 지 하루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 57개를 보유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 세력(nuclear power)'라고 언급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핵무기 숫자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한미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접근법을 뒤집고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북미 정상 간 소통설에 대해 "최고지도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사안"이라며 명시적으로 부인도, 확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낸 지 2시간 정도 후에 백악관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 나왔다. 김 총무부장은 한국 현지시간으로 이날 밤늦게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입장 발표문을 통해 "북미 지도자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고 세상이 다 알고 있어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묘한 수위 조절에 나선 북한의 공개적인 입장을 보고받은 뒤 다시 한번 직접 북미대화 재개를 제안하면서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해 구체적인 숫자까지 언급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에 그런 일(북한의 핵보유)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선 안 됐고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이미 무기를 갖게 됐고 나는 김 위원장과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미대화 재개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인지, 비핵화 성공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해선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를 공식적인 목표로 밝힐 경우 북미 대화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칫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체계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회담'에 치중하다가 과한 '선물'을 건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숫자를 57개라고 언급한 것 자체가 이미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핵무기 포기 의사가 전혀 없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외교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북러 밀착을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까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언급하면서 북한의 핵 지위가 더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추락의 원인이 된 이란 전쟁 대신 김 위원장과의 회담 추진과 북한 문제 해결을 외교 성과로 추진하려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날 발언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미국의 대북 기조를 수정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거래적 관계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뒤 재집권을 노리던 2023년에도 미국 언론에서 종종 보도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초 출범 이후 북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견지해오기는 했지만 김 위원장과의 담판이 성사되면 비핵화 문제는 미뤄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선언을 포함해 미국 유권자를 겨냥한 부분적 성과에 집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용인할 경우 한반도나 동북아의 안보 지형에는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교안보 분야 한 인사는 "한국 보수 진영이나 일본에서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여론 등이 거세질 수 있다"며 "이런 변화는 주한미군 주둔 등 미국의 대북 억제 태세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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