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를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속에 창설 25주년을 맞은 SCO가 중국의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협력체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일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비슈케크에 도착한 시 주석은 이날 오전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다음달 1일까지 비슈케크에서 열리는 이번 SCO 정상회의에서는 지역 안보와 교통·물류, 에너지, 디지털 협력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문제, 식량안보 등도 논의된다.
SCO는 2001년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출범한 유라시아 지역 안보·경제 협력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 벨라루스 등 10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SCO를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핵심 외교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리리판 상하이사회과학원 러시아·중앙아시아 연구 전문가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미국 주도의 서방과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이 SCO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 협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상품 교역액은 사상 최대인 1060억달러(약 145조원)를 기록했다.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와 안보상의 이유로도 중국에 중요하다. 중앙아시아는 중국 서부 신장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교통의 요충지다.
주융뱌오 란저우대 아프가니스탄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주변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SCO 정상회의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정세와 정보 공유, 대테러 협력 등이 주요 안보 의제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통해 구축하고 있는 육상 물류망도 핵심이다. 대표적 사업이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철도'다. 약 20년에 걸친 협상 끝에 착공된 이 철도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육상 교역로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체 육상 운송로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이란을 통과하는 노선이 현실화될 경우 페르시아만과 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통로도 확보할 수 있지만 이란에 대한 제재와 지역 정세 불안으로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러시아와의 역할 분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 리리판 상하이사회과학원 러시아·중앙아시아 연구 전문가는 "중앙아시아에서 '모스크바의 갑옷을 입고 있지만 심장은 우루무치에서 뛴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안보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SCO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국제기구로 발전했는지를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아르툠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는 "SCO를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효율적인 조직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엇보다 대화를 위한 협의체 성격이 강하다는 현실을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쑨윈 미국 스팀슨센터 중국프로그램 국장은 "일각에서는 SCO를 '실속 없는 조직'이라고 평가하지만 갈등을 예방하는 것 역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도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나선다. SCMP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SCO 정상회의 이후 중앙아시아 5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상회의를 열고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역 및 핵심광물 공급망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