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대만의 반도체 회사 미디어텍에 우리 돈으로 약 4조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엔비디아가 미국 외 지역에 직접 투자한 것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미국 빅테크들이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는 상황에서 기존의 독점적인 지위를 지키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35억달러(약 4조8000억원)를 투자해 미디어텍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디어텍이 전날 해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총 39억달러의 전환사채 대부분을 사들인 것이다.
미디어텍은 반도체 생산 없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대만의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다. 업계에서는 GPU를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PC 등 실제 제품에 연결하는 SoC 설계와 패키징 노하우를 지닌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AI 산업 호황으로 최근 커스텀 실리콘(맞춤형 반도체 칩 설계), 데이터센터 시장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혔다. 미디어텍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내년 AI 데이터센터 시장 점유율을 최대 15%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번 투자로 미디어텍은 엔비디아의 'NV링크 퓨전' 플랫폼을 활용하기로 했다. NV링크 퓨전은 데이터센터 서버 내부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여러 장치를 이어주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한다. 미국 빅테크가 자체적으로 칩을 개발하더라도 데이터센터에 칩을 연결하는 기술 등 AI 인프라는 여전히 엔비디아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디온 해리 엔비디아 HPC 및 AI 하이퍼스케일러 인프라 솔루션 부문 이사는 테크크런치에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기업"이라며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래픽카드 사업을 넘어 확장해 왔다"고 말했다.
양사는 이와 함께 미디어텍 SoC와 엔비디아 GPU를 결합해 가정용 PC, 기업용 워크스테이션, AI 개발자용 슈퍼컴퓨터에 들어갈 칩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미디어텍의 차량용 반도체인 '디멘시티 오토'에 엔비디아 AI·그래픽카드 기술을 더한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에도 나선다. 릭 차이 미디어텍 부회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클라우드 AI 인프라, 로컬 AI 컴퓨팅, 피지컬AI 기반 자동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브스는 엔비디아가 미디어텍의 전환사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환사채는 발행 당시에는 채권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자의 요청에 따라 회사 주식으로도 바꿀 수 있다. 사업 실적이 부진할 때는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큰 실적을 냈을 때 주식으로 전환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매체는 "이번 투자로 엔비디아는 맞춤형 AI 칩 시대가 도래하면 수익을 두 배로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사업 실적으로 한 차례, 전환사채 주식 전환으로 투자처인 미디어텍의 실적 호황을 간접적으로 또 한 차례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