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 당시 82공수 사단장(소장)이 마지막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는 장면이 육군 사진병에 의해 포착됐다. 이 사진은 20년 아프간 전쟁 종료를 상징할 뿐 아니라 최고 사령관이 장병들을 먼저 태우고 자신이 마지막에 남은 모습이어서 화제가 됐다.
'아프간의 마지막 미군'으로 알려진 사진의 주인공이 크리스토퍼 도너휴 장군(57)이다. 미군 내 특수작전 전문가인 데다 최연소 4성 장군이 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지난달 갑작스레 사퇴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여러 군 관계자를 인용,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의 압력과 두 사람의 갈등이 그 배경에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아프간 전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몇몇 장군들을 축출해야 한다고 믿은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철수 나흘 전 카불 공항 애비게이트 앞에서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폭 테러를 일으켜 미군 13명을 비롯, 170명이 사망한 사건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를 바이든 정부 실책으로 지적하면서 공세를 폈다.
헤그세스 장관도 '마지막 미군' 사진을 "셀피(셀카사진)"라고 부르면서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도너휴 장관과 아프간 전쟁 실패를 연관지었다고 전해진다. 헤그세스 장관은 보좌진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군 수를 줄이길 원한다"고 말해 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견 경력이 있는 한 미군 관계자는 "도너휴의 운명이 헤그세스 장관 손에 놓였었다"고 NYT에 전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출신인 도너휴 장군은 미 육군 최정예 대테러 부대인 델타포스 출신으로 30년간 20차례 이상의 파병 및 전투 경험을 거쳤다. 아프간 철수 이후엔 유럽 주둔 18공수군단장(중장)을 거쳐 유럽·아프리카 사령관(대장)으로 임명됐다. 50대에 4성 장군으로 임명되며 승진 가도를 달린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군사 인재라는 평판도 얻었다.
그는 미군 유럽·아프리카 사령관으로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이끌었다. 특히 병력에서 우세인 러시아를 상대로 드론, 로봇,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동원한 군사 작전을 주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크리스토퍼 카볼리 미국 유럽사령관 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총사령관의 후임으로 거론됐지만 헤그세스 장관의 반대로 무산됐다. NYT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처음에는 동의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애비게이트 사건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도너휴 장관은 랜디 조지 전 육군 참모총장 자리를 이어받을 후보로도 떠올랐지만 이번에도 헤그세스 장관 반대에 좌절됐다. 오히려 헤그세스 장관은 군 직제를 개편하면서 도너휴 장군이 4성 장군으로 맡았던 유럽·아프리카 사령관을 3성급(중장)으로 낮췄다. 물론 이는 군의 초점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도너휴 장군의 다음 보직은 쉽사리 결정되지 않았다.
도너휴 장군의 능력을 아는 공화당 일부 상원의원도 '도너휴 구하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헤그세스 장관이 정말 나와 일하고 싶어할 것 같으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결국 지난 6월 사임계를 제출했고 8월 27일자로 군을 떠났다.
일부에선 미군의 최고위 장관들이 줄사퇴한 것 또한 이들이 도너휴 장군을 옹호하던 분위기와도 관련 있다고 본다.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은 지난달 31일 사임했다. 존 펠란 해군장관,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도 각각 4월 물러났다. 현재까지 육군참모총장은 공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