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중립' 거부한 스위스… 대러 제재 유지·외교 유연성 택했다

조한송 기자
2026.09.28 07:54

중립 명문화 위한 개헌안 국민투표, 반대 70.15%로 부결

스위스 의회 건물 앞에 있는 동상/사진=로이터

스위스가 27일(현지시간) 헌법에 중립 원칙을 명문화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부결됐다.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분쟁 당사국에 대한 제재를 원칙적으로 금지토록 헌법에 규정하려는 안건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투표 개표 결과 이 안건은 반대가 70.15%, 찬성이 29.85%였다. 투표율은 47.06%였다.

이번 투표는 자국의 군사력으로 중립을 지키는 무장중립 노선을 어디까지 헌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할지가 쟁점이었다. 개헌안은 공격받지 않는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군사 동맹에 가입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유엔 제재를 제외하고는 무력 분쟁 당사국에 대한 제재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부결이 확정되면서 우크라이나 침략을 둘러싼 스위스의 대러시아 제재 유지는 확실시된다.

이번 논의의 계기가 된 것은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엄격한 무장중립을 이상으로 삼는 우파 정당인 국민당 등 보수 세력은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 동참을 문제 삼았다. 러시아가 자국을 적대시한 경위를 문제 삼으면 스위스가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제재 동참이 국제법상 중립 의무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스위스 정부는 "러시아의 중대한 국제법 위반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설명하며 개헌을 강행할 경우 정책의 유연성을 잃고 국익을 해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국민투표 결과가 확정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안보는 인접국들이나 유럽 대륙의 안정에도 좌우된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대러 제재 등의 참여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이러한 재량권이 스위스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스위스는 직접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8개월 이내에 10만명의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이 헌법 개정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번 투표는 국민당 등 보수계 세력이 서명을 모아 발의한 것이다.

스위스 중립 정책의 운용은 시대와 함께 유연성이 높아져 왔다. 1996년에는 NATO의 협력 체제에 참여해 공동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독일 등이 보유한 스위스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재수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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