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고가 장기전세주택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고 전문가들과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딜레마 또한 적지 않다. 강남권 임대보증금을 강북권 수준으로 낮출 경우 동일한 가격에 입지가 달라지는 '로또 전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싼 보증금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강남에 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으면 다양한 계층이 어울려 거주하는 '소셜 믹스'(Social Mix) 취지가 약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 대안으로 '전월세 전환'을 제안한다. 가처분소득은 높지만 목돈 마련이 어려운 고소득 신혼부부·청년층을 위해 전세 제도를 월세로 돌리자는 것이다. 실제 SH의 매입임대주택은 임대보증금의 최대 60%까지 월 임대료로 전환할 수 있다. 예컨대 보증금 100만원을 월세로 전환하고 월 임대료 2000원을 추가 납부하는 식이다.
전세 개념이 없는 영미권에서도 중산층 대상 공공임대주택은 소득에 연동된 월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가구소득의 약 30%를 주거비로 책정하는 미국 '근로자 주택'(Workforce Housing)이 대표적이다.
장기전세주택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초과 용적률의 50%는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아파트형 장기전세주택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공급된다.그러나 주거 복지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서 주민 갈등만 유발하는 고가 임대주택 공급을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다. 보증금에 상응하는 공공기여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주택정책 전문가는 "강남 핵심지역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공간 민주주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서울 도심이 대중교통망으로 촘촘히 연결된 점을 고려하면 신혼부부와 청년들이 반드시 강남에 거주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에 공공임대 한 채를 공급하는 비용으로 다른 지역에서 2~3채를 마련할 수 있다면 공공기여금을 받아 역세권 등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다른 지역에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전세주택Ⅱ(미리내집)의 분양전환 방식에 대해서도 신중론이 제기된다. 장기전세주택Ⅱ는 2자녀 이상 출산시 시세보다 최대 20%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출산을 장려한다는 취지지만 주택 가격이 비싼 지역일수록 분양전환에 따른 혜택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일례로 매매가 50억원을 웃도는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의 경우, 20% 할인 분양을 받으면 10억원 이상의 막대한 차익을 챙기게 된다.
서울연구원은 '생애최초 자가소유 지원정책 체계화 방향' 보고서에서 "공공이 소유한 임대주택 재고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소유권 전환 정책은 무리가 있다"며 "시세 연동형으로 임대료가 책정된 장기전세주택을 매각할 경우 분양전환을 받은 가구가 일정 기간 내 주택을 매도하면 서울시나 SH 등에 환매하도록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전세에도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장기전세주택은 입주자 선정 시 보증금 마련 과정에 대한 별도의 심사가 없어 '부모 찬스'를 걸러내기 어렵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전세 보증금까지 자금 출처를 조사하는 것에 대해 여론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미리내집은 향후 분양 전환까지 가능한 제도인 만큼 현 단계부터 수요층이 고가의 보증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