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SK텔레콤·네이버·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기업과의 'AI(인공지능) 동맹'을 실적 발표에서 부각했다. AI 투자 확대로 메모리 가격과 공급 부담이 커지자 구매 약정을 한 분기 만에 2배 이상 늘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업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7일 엔비디아가 발표한 2027회계연도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96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6% 증가했다. 데이터센터 매출은 890억달러로 117% 급증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폭증하는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엔비디아의 공급망·인프라 등에 대한 구매 약정은 직전 분기 1190억달러에서 2790억달러로 2.3배 늘었다. 증가분은 주로 메모리 조달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GPU(그래픽처리장치)에 탑재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공급 확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CFO(최고재무책임자)는 메모리 가격 상승폭이 예상치를 넘어섰으며 내년까지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AI 인프라 구축 자체가 메모리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급 제약에도 엔비디아는 2028회계연도 매출이 약 7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크레스 CFO는 "이는 공급 제약을 감안한 전망"이라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도 "공급 제약이 없다면 훨씬 더 높을 것"이라며 이미 상당한 공급량을 확보했지만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려면 더 많은 생산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도 주요 성과로 제시됐다. 엔비디아는 SK텔레콤·네이버·브룩필드와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가와트(GW)급 소버린 AI 인프라를 구축하며 한국의 'AI 팩토리'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와는 글로벌 AI 팩토리 확대에 필요한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는 다년간 기술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크레스 CFO는 LG와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협력도 직접 거론하며 한국에서 AI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 CEO 역시 올해 6월 방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과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황 CEO는 "지난해 가장 재미있었던 일 중 하나는 내가 어디서, 누구와 저녁을 먹을지 알아보는 것이었다"며 "그러면 그 회사 주가가 다음 날 두 배가 됐다"고 농담했다. 이는 지난해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회동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엔비디아가 메모리 공급망부터 AI 인프라, 제조·모빌리티까지 국내 주요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면서 한국이 글로벌 'AI 팩토리'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2028년까지 공급 부족 지속"…삼성·하이닉스 생산능력 확대 속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양사의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견조한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수요를 입증한데 이어 최소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급증하는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수요에 대응해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CFO(최고재무책임자)는 26일(현지시간) 진행한 '2027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데이터센터 매출 중 베라 루빈(Vera Rubin)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예상되며 '2028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70% 성장할 것"이라며 "2028 회계연도 말까지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라 루빈은 엔비디아가 이달부터 양산을 시작한 차세대 AI(인공지능) 컴퓨팅 플랫폼이다. '루빈 GPU(그래픽처리장치)'와 '베라 CPU(중앙처리장치)' 등을 결합한 구조다. 루빈 GPU 1대에는 288GB(기가바이트)의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가, 베라 CPU 1대에는 1.5TB(테라바이트)의 LPDDR(저전력 데이터더블레이트)5X가 탑재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두 제품의 핵심 공급사다.
엔비디아 AI 시스템의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는 메모리 수급난이 꼽힌다. 크레스 CFO는 "메모리 공급 부족은 엔비디아의 성장을 견인하는 수요 급증의 징후"라며 "생산능력 추가 확대를 위해 주요 메모리 공급사 3곳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들이 물량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먼저 LTA(장기공급계약)를 제안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번 분기 약 74%였던 매출총이익률이 4분기에 71~72%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CSP(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용 서버 DDR5 가격은 3분기 전 분기 대비 13~18% 오른 데 이어 4분기에도 3~8% 추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LPDDR5X 가격도 3분기 8~13% 오른 뒤 4분기 최대 5%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데이터센터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5개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설비투자 규모는 올해 8000억달러(약 1105조원)에서 내년 1조3000억달러(약 1795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지난 2분기 각각 89조5000억원, 60조5426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평균전망치)는 658조4335조원에 달한다.
양사는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P4(4공장)를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 연내 완전 가동한다. 공사가 중단됐던 P5도 지난 4월 착공을 재개했다.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메모리 생산 활용도 검토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충북 청주에 신규 팹을 건설을 위 장기적으로 각각 600조원, 10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는 첨단 패키징 착공식을 연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의 AI 투자가 계속되는 한 메모리 수요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시장 기대에 부응하는 AI(인공지능)발 수요 전망을 내자 국내증시 반도체 업종은 금리 압박을 딛고 일제히 반등했다. 산업 핵심주체의 낙관적 태도에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공포가 한겹 걷힌 분위기다.
27일 한국거래소에서 양대 반도체주와 연관 소재·부품·장비주 10종목으로 구성된 KRX K-AI 반도체 TOP2+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01.17포인트(2.96%) 오른 1만459.54로 장을 마쳤다.
삼성전자가 1%대, SK하이닉스가 2%대 상승으로 거래를 마감한 가운데 매수 온기가 고르게 번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날 시장에선 심텍이 12%대, 티엘비가 6%대 급등을 빚고 삼성전기·코리아써키트가 4%대, 기가비스가 3%대, 해성디에스가 2%대, 태성이 1%대 강세를 보였다. SK스퀘어도 강보합 마감했다.
총 35종목이 포진한 KRX 반도체 지수도 34종목이 상승하면서 325.24포인트(2.48%) 오른 1만3418.66을 기록했다.
국내 증권가는 엔비디아가 어닝콜에서 2028 회계연도(2027년 2월~2028년 1월) 매출 성장률 가이던스를 70%로 제시한 데 주목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공급제약을 감안한 전망으로 현재 고객 수요 기준으로는 100% 성장도 가능하다고 했기에 공급망의 생산 확대가 관건"이라며 "이날 가이던스는 45% 수준으로 형성됐던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가이던스가 높게 나타난 배경은 한 차례 더 상향된 하이퍼스케일러 자본지출(CAPEX) 전망, 중앙처리장치(CPU) 베라·언어처리장치(LPU) 그록 등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 가격 인상효과 등으로 추정된다"며 "타임라인에 따르면 스타게이트를 비롯한 소버린 AI 사업들도 올해 말부터 수요에 기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하이퍼스케일러 외 AI 클라우드·산업·기업(ACIE)을 향한 판매 호조, 중국을 배제하고도 높게 유지한 다음 분기 매출 전망도 기대 요소로 지목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ACIE향 데이터센터 매출 성장률(138%)은 하이퍼스케일러향 매출 성장률(102%)을 압도했다"며 "AI 인프라에 수익성이 있다는 증명을 바탕으로 산업별 레버리지(부채) 투자가 본격화하며 하이퍼스케일러뿐 아니라 다른 주체도 AI 인프라에 적극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 올해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이퍼스케일러만 보는 투자자들의 관념이 이번 발표를 계기로 깨지고 ACIE 매출의 성장이 인식된다면 전반적인 총유효시장(TAM)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AI 인프라 기업에 대한 전반적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업종 전망도 여전히 긍정적으로 국내 증권가는 본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강한 업황과 주주환원 정책이 맞물려 업종의 주가 저점을 높아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