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는 승려가 1년에 두 번 겨울과 여름을 맞아 석 달씩 수행처에 머물며 유행하지 않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여름에는 하안거, 겨울에는 동안거라 이름한다. 인도에서 우기 석 달 동안 적정처에 머물며 수행하는 것이 시작이다. 동북아의 여름과 겨울에 자연스럽게 안거를 하게 됐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여 음력 7월 15일에 해제한다. 해제일인 백중(百中)이 되면 백성들은 하루를 쉬면서 농한기 일꾼들에게 백중돈이나 새옷을 주기도 하고 장터 등지에서 축제를 열며 보냈다.
불교에서는 안거가 끝나는 그날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 등 인연 영가를 천도하는 재를 지낸다. 그중에 천도재 중에 독송하기도 하는 '부모은중경'의 내용이 어버이날 부르는 노래인 '어버이 은혜'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인간의 죽음이나 사후 세계관, 윤회와 천도는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은 다각도로 해석되지만 미신이나 단순한 의식 이상으로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추스르고 치유하는 유족들의 의식이다. 형식에만 빠진 과하고 소모적인 의식보다는 적절한 형식으로 고인의 안식을 기원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의식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이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도 급격하게 늘어간다. 지내더라도 간소해졌다. AI(인공지능)가 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시점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은 점점 더 재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조상과 제사에 대한 인식도 급격하게 바뀔 것이다. 종교적 상담도 AI를 통해 하고 그것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심도 깊은 경전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질문자의 심리와 진리를 통찰하는 답변은 아직 미흡하지만 심리적 위안과 위로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는, 수행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3000 년 동안 이어져 온 수행 전통인 안거에 답이 있을 것이다. 안거하며 수행하는 목적은 마음의 본질을 통찰하고 스스로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깨달음을 얻고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문자로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붉은 태양을 문자로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서 태양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태양을 안다고 하겠는가. 깨달음은 실존하는 스스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 명예욕이나 지위를 내세우지 않는 순수한 나눔의 기쁨은 AI에게 배울 수 없다. 그것이 삼천 년 동안 승가에서 안거 수행이 이어져 온 이유일 것이다.
남한 땅 곳곳의 사찰이나 암자에서 안거를 지내지만 참선 수행을 위주로 하는 선원 백여 곳 2000여 수행자들이 안거가 끝나면 죽비를 내려놓고 잠시 만행하는 시간을 가지며 가을이나 겨울 안거를 준비한다. 각자 얻은 바 없는 깨달음으로 세상에 청량한 바람이 돼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휴식이 될 것이다.
사찰의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우도의 마지막 그림이 입전수수(入廛垂手)다. 수행자가 저잣거리로 들어가 손을 드리우듯 해제 후의 만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수행의 확장이다. 고요한 산속에서 닦은 마음이 복잡한 세상 속 타인의 고통과 부딪힐 때 비로소 살아있는 자비로 증명된다. 그것이 한철 공부한 수행자의 밥값이다. 이렇게 대승불교는 나와 세상을 같은 무게로 바라본다. 수행을 통한 지혜는 자비로 드러나야 하고 그 자비가 방편을 찾아낸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공감과 사유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할 바 없다. 그래서 보살행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이 쉽지 않기에 선방에 앉아 하루 열 시간 이상 정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AI가 잠식해 가는 인간 세상에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시선을 드러내기 위한 하안거 정진을 끝내는 시점에 모든 수행자들의 앞길에 연꽃이 피어나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