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강국, 국가 순위보다 중요한 것[투데이 窓/최연구]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2026.09.04 02:00

표준과 생태계 지배해야 하는데
AI 인재명단에 한국인 거의 없어
세계적 기업과 인재 육성이 핵심

과학기술 강국을 상징하는 지표 중 하나는 노벨과학상이다. 노벨과학상만으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을 평가할 순 없지만,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하면서 과학선진국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벨과학상은 한 나라의 연구역량과 혁신 성과를 세계가 인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강국은 어떤 나라일까. 세계인이 사용하는 AI 앱이나 플랫폼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AI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거나 세계가 인정하는 AI 연구자와 기업가를 배출하는 나라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AI 강국(AI G3)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에서는 국가 순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시장에서 누가 표준을 만들고, 누가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중요한 것은 국가 순위 자체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기술이 얼마나 실질적 경쟁력을 갖느냐다.

오늘날 세계 AI 시장은 엔비디아, 구글, MS, 메타, 오픈AI, TSMC 등 거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도 이들 AI 반도체·플랫폼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특수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급성장하고 있지만, 두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반도체 대장주 TSMC에 못 미친다. 9월 1일 기준 세계 시총 순위에서 TSMC는 6위, 삼성전자는 12위, SK하이닉스는 17위다. 오늘날 AI 산업 경쟁은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세계 초일류 기업 간 경쟁으로 이뤄진다. 특히 플랫폼과 반도체 시장은 승자독식 특성이 강해 선도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이런 현실에서 'AI 3강'이라는 목표만으로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발표된 두 개의 'AI 인재 명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는 미국 TIME이 발표한 '2026 TIME 100 AI'로 AI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한 명단이다. 한국인으로는 생성형 AI를 작품에 활용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이 '사상가' 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AI 기술과 산업을 이끄는 한국 연구자나 기업인은 아무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중국투자진흥사무소(IPTO)가 발표한 '글로벌 AI 100대 인재'다. 약 9만 6000편의 논문과 20만 명의 연구자를 분석해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 100명을 선정했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은 57명, 미국은 20명이다. 한국인은 KAIST 권인소 교수 한 명만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 두 명단만으로 국가의 AI 역량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세계적 AI 인재가 미국과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논문 중심의 연구지표에서는 중국이 압도하고 있고, 기술과 플랫폼에서는 미국이 독주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중에 이은 국가 순위 3위라는 것이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AI 강국은 연구개발, 산업기술, 인재 등 세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특히 세계적 AI 기업과 인재를 얼마나 보유하는가가 관건인 만큼 우리 목표를 보다 현실적이고 산업 중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 반도체 기업을 안정적인 세계 시총 10위권으로 육성하고, 우리 AI 플랫폼과 모델을 글로벌 핵심 플레이어로 키운다는 등의 실익이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또한 세계가 인정하는 AI 연구자와 창업가를 지속 배출해 글로벌 인재 100인 명단에 2~3명 포함되게 하는 것도 도전적 목표로 삼을 만하다. 'AI G3' 목표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국가 순위보다는 기업, 플랫폼, 기술, 인재 면에서 측정 가능한 성과 목표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진정한 AI 선도국의 기준은 국가 순위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대체불가의 경쟁력을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되어야 한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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