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금융, 속도만큼 책무도 중요하다[MT시평/안수현]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6.09.09 02:00

지난해 11월 영국 재무부는 디지털 전환과 경제 위기 속 소외계층의 경제 참여와 금융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20년만에 '금융포용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 금융위원회 역시 올해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을 출범하고 '포용금융 최고책임자' 도입을 논의하였다. 두 나라 모두 금융소외를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영국은 재무부·금융감독청(FCA)·의회가 역할을 나눈 삼중 구조이다. 재무부는 '설계자'로서, 경제적 학대·정신건강·접근성을 축으로 은행 접근, 저축, 보험, 신용, 채무지원, 금융교육이라는 6개 우선과제(신분증 없는 계좌개설 시범사업, 금융허브 350곳 설치 등 포함)를 제시해 FCA와 업계에 실무를 위임했다. 집행자인 FCA는 이미 2024년 9월부터 현금접근성 규칙을 시행해 은행이 지점·ATM을 폐쇄할 경우 석 달 안에 지역 현금 접근성을 재검토하도록 의무화했다. 감시자 역할을 하는 의회 재무위원회는 이 전략을 검토한 뒤 '누가, 어디서, 왜 배제되는지' 정량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기준선, 목표, 담당자, 기업 단위 데이터, 정기 보고체계가 없다면 활동 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6개월 안에 정량 분석과 책무 체계 구축, 자발적 조치가 실패할 경우 재무부가 개입할 기준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한국의 접근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금융위원회는 취약계층 지원을 넘어 '모두를 위한 포용적 금융'으로 근본적 재설계를 한다는 목표로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을 출범했다. 감독총괄·정책서민·금융산업·신용인프라 4개 분과로 구성했다. 이 중 정책서민 분과에서 자금공급, 재기 지원, 연체채권 관리, 불법사금융을 논의해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 도입을 검토했다. 국회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국회도서관이 지난 5월 공동 발간한 '포용적 금융 등 금융개혁 방안II' 보고서에서는 하위 10% 이하 저신용자 대상 융자·보증 실적이 2023년 66.1%에서 2025년 49.1%로 급락했음을 지적했다. 이들 기관이 정례적 감시자 역할로 제도화된 것까지는 아니지만 감시자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포용금융이 진정한 구조적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지역·인구 통계별(장애·연령·성별·국적 등) 금융소외 양상을 정기적·종합적으로 추적하는 실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러한 조사체계가 미약하다. 책무의 구체성도 부족하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정량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미달 시 어떤 후속 조치가 뒤따르는지 효과성이 명확하지 않다. 금융회사의 자발적 노력이 실패할 때의 법적 개입수단과 재원의 지속가능성도 과제다.

금융소외가 신용평가·건전성 규제·점포망 등 금융시스템 설계 자체가 만든 구조적 결과라는 인식은 양국이 같다. 전략추진단이라는 실행 조직을 만들고 논의사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속도는 한국이 앞선다. 다만 과정의 공개가 곧 책무성을 다하는 건 아니다. 금융회사 역시 포용금융 최고책임자를 신설하는 일에 대해 감독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저신용자 신용정보 인프라 개선을 통해 리스크 관리 역량을 입증하고 신규 고객 기반을 넓힐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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